다음 목적지인 루체른으로 이동하려면 몽생미셸에서 버스를 타고 렌 역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탄 후,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취리히까지 날아가서 다시 한 번 루체른으로 향하는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실로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이용한 짧은 휴가였음을 감안한다면 시간 활용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여행인 셈이었죠. 오로지 시간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보면 차라리 그 시간에 파리 인근의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을 정도로..
하지만 여행 계획 당시에는 어떻게든 몽생미셸과 루체른 이 두 곳을 가 보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일정을 잡았던지라, 애초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동하느라 많은 시간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이왕 파리까지 왔으니 이동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루체른도 꼭 가 보는게 낫겠다 싶었거든요. ㅎㅎ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렌 역.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로 향하는 떼제베(TGV)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KTX의 모태가 된 모델이 바로 프랑스 TGV였는데, KTX를 도입한 것이 2004년도의 일이었으니,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프랑스에 와서 TGV를 타게 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가 프랑스에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입니다. 프랑스가 KTX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병인양요(1866년)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우리나라에 반환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후 프랑스는 사업권을 따내고 난 후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는 외규장각 의궤 전권 반환에서 일부 반환으로 말을 바꾸며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결국 자국민들의 외규장각 의궤 반환 반대 여론과 국내법 실정을 이유로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우리나라의 뒤통수를 치기 일보직전 상황까지 치달았죠. 그런 상황에서 미테랑 전 대통령이 생색이라도 내듯 반환 합의의 상징적인 의미로 '휘경원소도감의궤' 1권만 우리나라에 반환하게 됩니다. 약속의 전면 철회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그렇게 흐지부지되어 가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작업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은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7년이었습니다. 프랑스 측에서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면서 결국 지난 2011년 4월 14일, 외규장각 의궤 297권 전권이 프랑스에 약탈된지 145년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영구 반환이 아니라 5년 대여의 형식으로 합의를 했다는 점입니다. 형식상 (5년마다 갱신 합의가 전제된) 영구 임대로 들여온 것이기도 하고, 이미 지난 2월에 대여 합의가 갱신된 상황이긴 하지만,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우리가 보유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갱신 합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TGV를 탈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지만, 그렇다고 TGV를 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파리로 향하던 중, 그칠 것 같던 빗방울이 파리로 향하는 중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거의 대부분 날씨가 좋았었는데, 오랜만에 비와 함께 하는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여행 중이 아니라 이동 중에 비가 내려 다행이었네요.
스위스 취리히로 태워줄 비행기 체크인 카운터를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 확인 중..
체크인 카운터가 위치한 2G 터미널로 이동해야 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
탑승구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렸나 봅니다. 저희가 탈 비행기가 탑승구를 배정받지 못해 게이트를 내려가 비행기가 주기되어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예전에 몽골 여행 다녀왔을 때 이렇게 비행기 타러 갔다가 다른 비행기를 잘못 탄 경험이 있어서 이럴 때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활주로 위에 안내 표식이 잘 부착되어 있어서 무사히 취리히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비행기를 잘못 탔다가는 자칫 실수가 아닌 테러범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으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당히 오래된 듯 보이는 비행기 좌석. 좌석에 앉으니 구식 좌석이라 그런지 약간 딱딱한 느낌이더라구요. 파리에서 취리히까지 기껏해야 1시간 조금 넘는 비행시간이라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게다가 운좋게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아서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파리 상공. 비구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차를 타고 파리로 이동하는 동안 왜 그렇게 비가 내렸는지..
파리에서 취리히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나름 국제선임에도 불구하고 운항거리가 짧아 기내식은 제공하지 않고 간단한 음료와 너츠류를 줍니다. 사랑해 마지 않는 하이네켄이 있길래 하이네켄 한 캔과 함께 짧은 비행을 즐겼습니다.
국경을 넘어가는 건데, 짧은 비행시간 때문에 마치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실제 비행시간도 비슷하고 말이죠. 비행기가 도착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 보니 다들 혈액순환을 도모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닐까 싶네요. ㅎㅎ
위탁 수하물로 보낸 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제 캐리어 앞에 가디건처럼 보이는 이상한 물체 하나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혹시 제 가방에서 빠진 건 아닌가 머리를 굴려봤으나, 저런 옷을 챙겨온 기억이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제 캐리어를 픽업했습니다. 혹시나 저 가디건이 제 가방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면, 또 다른 제 물건들이 공항 여기저기에 널려 있을지도 몰라 잠시 걱정을 했었습니다. ㅎㅎ
입국장 면세점을 지나 스위스로 입국. 이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쉥겐 조약이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었는데,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일련의 테러 등으로 인해 유럽내 국가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쉥겐 조약이 현재와 같은 모습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취리히에 도착해 루체른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으나..피곤해서인지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더라구요. ㅎㅎ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루체른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서 찾은 곳은 버거킹! 역시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국가 중 하나인 스위스답게 햄버거 세트 메뉴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더군요. ㅎㅎ
맛있게 먹고 나서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여행을 하려니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기에...ㅠㅜ 이것이 제게는 유럽에서의 첫 택시 탑승 경험이었습니다. ㅎㅎ
예약한 호텔은 '익스프레스 바이 홀리데이 인 루체른'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객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도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출연했던 백일섭 아저씨도 마음에 들어하셨을만한 사이즈일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살짝 헷갈리는데 트윈 침대가 아니라 더블 침대였나 봅니다. 남자 둘이서 체크인 했는데, 틀림없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을 것 같네요. ㅋㅋ
뭐 당시에는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에 저런 사실에 신경쓸 겨를도 없이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귀신같이 체력을 회복. 바로 호텔 제공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ㅎㅎ 외곽에 위치한 호텔이라 이런 곳에도 투숙객이 있을까 싶었는데, 저희 말고도 꽤 많은 투숙객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렇게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죠.
익스프레스 바이 홀리데이 인 루체른 호텔의 조식은 꽤 먹을만 합니다. 대부분 빵 종류이긴 했습니다만...ㅎㅎ 아, 계란 받침대가 특이해서 계란 담아보려고 삶은 계란을 2~3개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집에선 삶은 계란 잘 먹지도 않는데, 게란 받침대 집에 있으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는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디저트까지 거하게 가져다 먹었습니다.
숙소 바로 바깥은 농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여행중에 농장 뷰 룸에서 잠을 잤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ㅎㅎ 아침에 소, 말 혹은 개 울음소리에 잠을 깨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ㅋㅋ
그래도 내부는 깔끔했던 익스프레스 바이 홀리데이 인 루체른 호텔. ㅎㅎ 자, 이제 본격적으로 루체른 여행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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