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잠들기 전에 급하게 호텔 예약 앱을 통해 예약해둔 호텔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괜찮은 호텔이 저렴한 가격에 나온 것을 보고는 기쁜 마음에 예약을 서두르느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호텔까지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 한 탓이었죠. 게다가 데이터 로밍 무제한을 신청해 왔기에 길을 모르면 그냥 구글 지도 앱을 켜서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며 길을 찾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구요. ^^;
어쨌든 구글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예약했던 알펜호프 호텔을 찾아 무사히 체크인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더라구요. 예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친절한 직원이 호텔 시설 사용법 및 인근 약도 등 한참 동안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더라구요. 저야 어차피 체르마트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설명을 해 주는 직원이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호텔 디너가 맛있다며 꽤 강하게 얘약을 권유했던 것 정도? 배가 고프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중하게 거절하긴 했지만요.
체크인을 완료하고 룸을 안내 받았습니다. 구석에 위치해 있는 방이어서 발코니 쪽 외에도 한 쪽 벽면이 창문으로 되어 있어 좋더라구요. ^^ 호텔 룸에서 바라본 아늑한 분위기의 체르마트 전경.
호텔 직원이 인근 지역 주요 시설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체르마트 시내 지도. 지도상으로는 꽤나 넓어 보이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불가능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인내심을 요하는 정도긴 했지만요. ^^;
호텔 직원의 안내에 의하면 마터호른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운행시간은 이미 끝나서 탈 수 없을 거라고 했으나, 오후시간을 이대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일단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수넥가 파라다이스입니다. 제가 묵었던 알펜호프 호텔로부터는 걸어서 약 3~4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봤으나, 호텔 직원의 말대로 마지막 운행하는 케이블카는 이미 떠난 직후였습니다.
마터호른 구경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하고, 아쉬운대로 체르마트 시내 산책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호텔 발코니(일반 가정집인지도 모르겠네요.)에 널린 빨래들. 아마 트레킹을 하고 나서 땀에 젖은 빨래감들인가 봅니다. 청정 지역 체르마트의 맑은 공기에 빨래를 널면 살균도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
트레킹하기 딱 좋을 날씨였는데, 이대로 가볍게 동네 산책만 하자니 아쉬운 마음이 계속 남더라구요. ^^;
빙하수가 흐르는 마터비스파 강. 마터비스파 강은 체르마트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규모만으로 보면 강이라기보단 시냇물에 가깝지만, 유량이라든가 유속을 보면 계곡을 보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제가 묵었던 알펜호프 호텔 앞으로 이 마터비스파 강이 흘러 밤에 발코니 의자에 앉아 콸콸콸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맥주 한 잔 하기 딱 좋더라구요. ^^
한참을 걷다가 발견한 베이커리. 호텔에서 권유했던 디너를 거절했던 것도 무색하게 갑자기 배가 고파져 빵이라도 사 먹기 위해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각이어서 간단하게 빵 한 개와 음료수로 배를 채웠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체르마트 베이커리의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한껏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체르마트 산책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적한 분위기의 체르마트. 마터호른 구경 뿐만 아니라 호숫길 트레킹을 위해 체르마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지만 단순 휴양을 위해서도 손색 없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르마트의 고도는 해발 1,615m로 꽤 높은 편입니다만, 이동하는데 큰 무리는 없더라구요. 이렇게 운동을 즐기는 분들도 많았구요.
체르마트의 유명한 구경꺼리 중 하나는 아침시간 혹은 저녁시간에 아이들이 산양 떼를 몰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인데, 아쉽게도 전 시간대를 맞추지 못했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체르마트 시내 어느 곳의 담벼락에 장식된 '산양 떼를 몰고 가는 소년' 조각을 구경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체르마트 메인 스트리트의 모습입니다. 온통 붉은 색 꽃으로 장식된 호텔들이 인상적인 모습.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이 곳에서 영업 중인 맥도날드 매장의 모습입니다. 여느 곳의 맥도날드 매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 건물 외형으로만 보면 한 200년은 계속 영업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맥도날드보다 먼저 생겨난 목조 건물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상점, 음식점 등등이 몰려 있어 이 곳은 체르마트의 다른 장소보다도 늘 많은 사람들도 붐비는 곳 중 하나입니다.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복귀하기 전, 저녁식사꺼리를 구입하려고 근처에 있는 쿱(Coop)에 들렀습니다. 쿱은 스위스 어디에서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마트입니다. 맥주를 포함해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구입해서 이제 호텔로 고고씽~
룰루랄라 신나서 호텔로 돌아가는 중에 뭔가 허전한 것 같아 찬찬히 살펴보는데 아뿔싸 !!! 어깨에 있어야 할 가방이 보이질 않는 겁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가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 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군생활 이후 오래만에 느껴보는 막막함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도 그럴 것이 가방 안에는 여행을 위해 필요한 여권, 환전해 온 100여 만원의 스위스 프랑과 달러화, 유로화를 비롯하여 뉴아이패드 등등 제게 소중한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었으니까 말이죠.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방법은 지금까지 제가 걸어왔던 길을 역추적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방금 전에 장을 봤던 쿱(Coop)부터 시작해 체르마트 역까지 샅샅이 훑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짐나 1시간 30분 정도의 탐색에도 불구하고 제 가방은 찾을 수 없었고, 이대로 꼼짝없이 체르마트에서의 일정을 접고 여권 분실 신고 절차를 밟아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두어야겠다는 마음에 근처 매장 아무데나 들어가서 경찰서 위치를 물었더니 이미 다 퇴근하고 없을 거랍니다. 오후 7시 정도였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도 '역시 선진국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구나'하며 부러워했던...ㅋㅋ
난감해하는 제 모습을 보고 있던 매장 직원이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일단 전화로라도 신고해 두고 다음날 직접 경찰서에 찾아가 보라며 전화번호와 위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 보니 저 메모를 보고 어떻게 경찰서에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점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힘없이 호텔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호텔 룸 키 역시 가방 안에 있었기에 룸 키도 재발급받아야 하는 상황. 호텔 프런트에 가서 직원에게 여차저차해서 룸 키를 재발급받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직원이 싱긋 웃으며 어디론가 다녀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직원의 손에 들려진 물건을 보는 순간, 정말 연극 무대 위의 주인공에게 비춰지는 하이라이트처럼 한 줄기 광명의 빛이 내리는 듯 했습니다. 호텔 직원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이 다름아닌 제 잃어버린 가방이었으니까요.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물었더니 호텔 직원 왈, 근처 베이커리 사장님이 문을 닫기 전에 정리를 하다가 가방을 발견했는데, 안에 알펜호프 호텔 룸 키가 있어서 이 호텔 투숙객이 흘리고 간 것이구나 싶어 퇴근길에 맡기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고 정직할 수가...아마도 빵을 먹고 나서 배도 부르겠다 한껏 여유가 생긴 상황에서 체르마트의 경치에 정신이 팔려 카메라를 의자에 놔둔채 그냥 출발해 버렸나 봅니다.
연신 호텔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 약 2시간 사이에 제게 벌어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인하여 절반은 기쁨, 또 나머지 절반은 황당함을 느껴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약 2시간만에 되찾은 제 가방입니다. ㅠㅜ
구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아이패드는 물론...
여권...
현금...
그리고 다른 자질구레한 아이템들까지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롤러코스터를 탄 것보다 더한 감정 변화를 겪었던 터라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라구요. 마치 10시간 정도 산악 행군을 하고 돌아온 것 마냥...야외 자쿠지에 가서 피로를 풀고 나서야 다시금 모든 감각이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나른한 기분으로 호텔 발코니에 앉아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호텔 레스토랑 디너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결국 이 날의 에피소드로 인해 저는 루체른 일정을 포기하고 체르마트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겪은 체르마트에서 하루만 머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말이죠. 바로 호텔 프런트에 내려가 1박 연장 ! ㅎㅎ
자, 이제 다음 포스팅부터 본격적으로 체르마트의 진면목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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