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디텍티브 (Mad Detective, 2007)

다중인격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는 소재를 다룬 두기봉 감독의 매드 디텍티브 (Mad Detective). 2007년 베니스 영화제 깜짝 경쟁 부문 초청, 2008 아시아 영화제 각본상 수상, 2008 충무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이라는 화려한 이력 외에도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영화를 연출한 두기봉 감독 ! 두기봉 감독은 조만간 제가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취재(?)하게 될 베니스 영화제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거든요. 조만간 베니스로 출국하기 위해 영화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정리 중인 상황이니 제가 두기봉 감독의 연출작 <매드 디텍티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겠죠? ^^




두기봉 감독과 위가휘 감독의 공동 연출 작품인 <매드 디텍티브>가 9월 18일 개봉에 앞서 8월 25일 CGV 용산에서 언론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9월 3일부터 9월 11일까지 개최되는 제 2회 서울 충무로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된 <매드 디텍티브>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요?


"미치광이 번 형사, 정말 미친 것일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드 디텍티브>는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다중인격 범죄 스릴러물입니다. 인간 내면의 다중인격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번' 형사가 재연 수사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다중인격의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지요. 범행 장면을 스스로 재연함으로써 범인의 심리를 읽어냄으로써 범인을 가려내는 방식의 수사를 통해 어려운 사건들을 여러 차례 해결한 '번' 형사지만, 상사의 은퇴식 날 기이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미친 형사'라는 오명과 함께 경찰을 그문두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이 '매드 디텍티브'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정작 '번' 형사는 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인격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여러 인격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번 형사가 한 사람의 여러 인격을 보고 취하는 행동들을 보고 번 형사가 미쳤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두기봉 감독은 <매드 디텍티브> 연출과 관련해 "우리가 진실을 깊이 파헤치려고 하면 할수록 현실감은 점점 사라져 간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들이 이어질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영화 설정상으로 '번 형사'는 전혀 미치지 않았지만(단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인간의 여러 인격을 볼 수 있다는 아주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현실에서의 '번 형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친 형사'로 낙인찍힙니다. 제목에서부터 두기봉 감독이 말하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두기봉 감독과 위가휘 감독은 <매드 디텍티브>의 독특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자신들이 현실 속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단 이틀 동안의 파트너였던 번형사와 호형사, 다시 만나다"

'번 형사'가 상사 은퇴식에서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경찰 직으로부터 물러난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몇 년 전 이틀 동안이나마 파트너로 일했던 '호 형사'가 '번 형사'를 찾아옵니다. 숲에서 절도용의자를 쫓던 '왕 형사'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의 동료 '치와이'만이 무사히 돌아오게 되는데 '왕 형사'의 행방이 18개월이나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탄환이 18개월 전 실종된 '왕 형사'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왕 형사' 실종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맡게 된 '호 형사'는 신참 시절 단 이틀 동안 같이 일했지만, 그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미궁 속으로 빠진 수사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경찰을 그만둔 '번 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이죠. 아내의 만류로 인해 고민하던 '번 형사'. 하지만 운명적으로 이 미스테리한 사건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만의 신기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인격은 몇 개인가?"

절도 용의자를 쫓던 중 실종된 왕 형사를 뒤로 하고 혼자서 살아 돌아온 '치와이'. '번 형사'는 직감적으로 '치와이'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그의 행적을 뒤쫓게 됩니다. 그리고 '번 형사'는 '치와이'의 내면에 냉철한 여성, 폭력적인 남성 등 7개의 서로 다른 인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사람 내면의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을 볼 수 있는 '번 형사'이지만, '치와이' 안의 7개의 인격을 확인하고서는 그 역시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7개나 되는 인격이 공존하는 다중 인격자는 '번 형사'도 처음 만난 것이거든요.

<매드 디텍티브>는 기존의 다중인격장애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여러 개의 인격을 스크린상에 직접 표현함으로써 관객들 역시 '번 형사'가 눈으로 보는 장면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기존 영화들에서는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이 있다면 그 역을 맡은 한 명의 배우가 여러 개의 인격을 동시에 연기했지만, <매드 디텍티브>는 '번 형사'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보는 장면에서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관객들이 영화 속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을 좀 더 현실감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 때문이었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혹시 내 안에도 저렇게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저히 제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은 제 안의 또 다른 인격이 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

<매드 디텍티브>가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영화 속 다중인격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원래의 캐릭터와 캐릭터 속 다른 인격의 여러 캐릭터를 상황에 따라 교차해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번 형사'와 주변 인물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명확함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두기봉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셈이죠.




"무서운 진실을 보는 번 형사의 범인 치와이 추적, 과연 그 결말은?"

'번 형사'는 '치와이'를 추적하면서 '치와이' 안에 숨겨진 인격들이 '왕 형사' 실종 사건과 도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 과정에서 특유의 재연 수사가 다시 한 번 등장하구요. 재연 수사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현재 가지고 있는 단서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을 그대로 재연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범인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는 번 형사만의 특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 형사'의 독특한 수사 방법에 회의를 느낀 '호 형사'는 '치와이'의 치밀한 거짓말에 오히려 '번 형사'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번 형사'는 범인으로 단정지은 '치와이'를 잡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과연 번 형사는 범인인 치와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성선설과 성악설, 당신은 어느 쪽을 믿는가?"

단순한 실종사건으로 시작된 영화 속 사건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뒤엃히며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며, 결말 역시 '아,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아마도 두기봉 감독과 위가휘 감독의 철학이 묻어나는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아마도 두기봉 감독과 위가휘 감독은 성악설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결말이었습니다. ^^

'오우삼'을 능가하는 뉴웨이브 스타일리스트 두기봉 감독, 그리고 '홍콩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스토리텔링의 귀재 위가취 감독. 이 두 사람의 공동 연출로 탄생한 <매드 디텍티브>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범인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물답게 빠른 호흡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도록 하고, 인간 내면의 다중성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장면에 몰입하도록 합니다. 영화 러닝 타임이 길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두 감독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 결론지을지 궁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구요.

7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치와이', 그의 모든 인격을 볼 수 있는 '번 형사', 지금의 상황이 그저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한 '호 형사'. 이들은 영화 후반부에 거울로 이루어진 방에서 총격전을 벌입니다. 거울로 이루어진 방 안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으로 인해 산산이 조각나는 거울 파편들. 이 파편들 속으로 등장인물들의 여러 형상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 역시 영화의 결말을 암시해 주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영화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번 형사'는 의도했던 대로 '치와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치와이'가 '번 형사'의 추적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9월 18일 영화 개봉을 기다려 주시길! ^^




<매드 디텍티브>의 주인공인 '번 형사' 역할은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에서 주목할만한 10대 배우에 이름을 올린 배우 유청운이 맡고 있습니다. 배우 겸 가수, 모델 등이 일반화된 홍콩에서 오직 연기만을 고집하는 배우 유청운은 다중인격자의 여러 인격을 볼 수 있는 캐릭터 역을 너무나도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영화를 찍고 난 이후 실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

그리고 7개의 인격을 가진 '치와이' 역은 홍콩 TV 드라마의 베테랑 연기자인 임가동이 맡았습니다. <용봉투>, <흑사회>, <흑사회2> 등을 통해 지난 10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7년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트라이앵글>에서도 두기봉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임가동은 <매드 디텍티브>에서 때로는 날카롭고 이성적이지만, 또 때로는 불안하고 두려운 눈빛을 가진 다중인격 범죄자 역할을 맡아 유청운과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호 형사' 역은 빼어난 외모와 무술실력의 안지걸이 연기했습니다. 무술감독 원화평에 의해 발굴되어 서극 감독의 <흑협2>에서 주연배우로 발돋움한 안지걸은 이연결의 할리우드 진출의 공백을 메워줄 홍콩 차세대 액션스타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3명의 주연배우를 통해 두기봉 감독과 위가휘 감독은 인간 내면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낸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9월 18일 개봉을 기다려 주시길 !

2007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깜짝 러브콜을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던 <매드 디텍티브>. 연이어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2008 아시아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였고, 9월 3일부터 개최되는 서울 충무로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전세계 영화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는 <매드 디텍티브>가 과연 한국의 영화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