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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알.이.씨 ([●Rec], 2007)

by 맨큐 2008.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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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집에서 TV로 수사반장,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라든가, 공포영화를 보다가 무서운 장면이라도 나올라 치면 항상 이불을 뒤집어 쓰고 두 눈만 내민 채 지켜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섭긴 했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무서운 장면을 볼 때라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 장면을 볼 때면 조금이나마 공포감이 줄어드는 듯 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범인, 귀신 등이 등장해서 저희 집 안으로 쳐들어 오더라도 어린 마음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꽁꽁 숨어있으면 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꿩이 적이 나타났을 때 머리만 숨기고 안도하는 것처럼 말이죠. ^^;

그 후로 나이가 들면서 스크린 속 공포 장면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긴 했습니다. 비록 순간적으로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견딜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폐쇄적인 공간 안에 무서운 존재와 함께 갇혀 버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만큼은 여전히 공포감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라는 공간에 괴물과 함께 갇혀버린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마치 제가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더라도 막혀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주인공을 찾아낼 것이라는 두려움, 즉 시시각각 조여오는 긴장감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힘들더라구요.




알.이.씨(REC)는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다는 인하우스 공포 영화의 한 종류로, 한 아파트 건물 안에 갇혀 버린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괴이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영화인 것이죠. 알.이.씨(REC)는 우연히 사고 현장에 함께 하게 된 안젤라라는 TV 리포터가 공포스러운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장면을 카메라맨인 파블로가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관객에게 보여지는 형식의 영화입니다. 이로 인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3인칭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공포 영화에서와 달리 사건 현장을 자신들이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듯한(혹은 촬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리얼TV 다큐 프로그램의 리포터인 안젤라와 카메라맨 파블로가 촬영을 위해 소방서에 방문하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리얼다큐 프로그램인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스페인 TV에서 실제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며, 영화 속에서 안젤라로 등장하는 마누엘라 벨라스코가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영화를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소방관들의 일상을 취재하던 도중 한 통의 구조 요청 전화가 울리게 되고, 그 순간부터 소방관들의 휴식시간은 깨지고 영화 속 현실은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한 안젤라와 파블로는 사건 현장을 하나도 빠짐 없이 찍기 위해 밀착취재를 시도합니다. 소위 특종을 터뜨리기 위한 노력이었겠죠.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발광하는 노파에게 공격을 당하고, 건물 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사람들은 급히 탈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건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출입문으로 가 봤지만 모든 출입문은 이미 당국의 폐쇄 조치로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안젤라와 파블로를 포함해 현장으로 출동했던 소방대원들까지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원인도 모른 채 꼼짝 없이 건물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건물에 꼼짝없이 갇혀 대책을 논의하던 도중,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 중 일부가 무언가에 전염된 듯 하나, 둘씩 기이하게 변하고, 아직 온전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건물 안을 벗어나려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딜레마가 시작됩니다. 건물 안에 남아 있으면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해 자신들도 좀비로 변할 것이고, 건물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면 건물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들로부터 총알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니까 말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떻게든 건물 안에서 좀비들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는 것 뿐입니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좀비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스스로가 도망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긴장감을 제대로 느끼신 분들이라면 영화 자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고 말이죠.



실제 외국에서 알.이.씨(REC)가 상영되었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제가 영화를 봤을 때에는 이런 긴장감을 참지 못 하신 몇 분이 영화관을 빠져나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공포영화나 재난영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적용한 핸드헬드 촬영 기법 때문에 일부 분들은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클로버필드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REC의 핸드헬드 기법도 무난하게 견딜 수 있을 듯? ^^;




게다가 이렇게 쫓고 쫓기는 현장을 담기 위함이라면 핸드헬드 기법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영화 속 긴박감도 한층 더 살아난 것 같고 말이죠. 이 모든 장면들은 특종 현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실시간으로 파블로가 카메라로 촬영한 관점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집니다. 계속해서 카메라맨인 파블로를 다그쳐 모든 장면을 촬영하게 한 덕분에 이렇게 공포에 질린 자신의 모습까지도 관객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지게 되는 것이죠.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안젤라, 과연 그녀의 운명은?




리얼리티 다큐 형식의 공포 영화 알.이.씨(REC)! 영화의 러닝 타임 78분 중 초반부는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의 긴장감은 지금까지 봤던 공포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최고였던 것 같아요. 아무리 깜짝 놀래키더라도 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숨막힐 듯 놀랐던 장면들도 몇몇 있었고 말이죠. ^^;



아마 남성 분들이 평소 흠모해 마지 않던 여성 분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깜짝 놀라며 자신에게 안기는 그녀 때문에 영화의 간장감과 관계없이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왜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느냐'며 그녀가 구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할 듯~ 알.이.씨(REC)를 보셨던 제 주변의 대부분 여성 분들은 독특한 카메라 워킹 때문에 너무 어지러웠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독특한 핸드헬드 기법의 영상을 카메라에 담은 인물은 영화의 촬영감독인 파블로 로쏘라 합니다. 카메라 감독이 실명으로 영화에 등장한 셈이죠. 2007년 베니스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받았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던 알.이.씨(REC)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지금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시길! 공포명가 스페인 영화의 독특함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영화 속 명대사 : 파블로! 파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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