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남기는 영화 리뷰. 영화를 보는 내내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영화,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
파리를 여행했던 기간은 단 이틀. 그마저도 바로 다음날이면 프라하로 넘어가야 했기에 이틀을 온전히 파리에 머무르지 못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몽마르뜨 언덕부터 물랑 루즈, 에펠탑, 그리고 파리의 야경까지...짧은 파리 체류 기간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은 여전히 가슴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고,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시작되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파리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꺼낼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밤거리를 혼자 걷고 있는 주인공 길. 밤하늘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한 장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사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그려진 배경은 파리가 아니지만, 우디 앨런 감독이 굳이 이 장면을 영화 포스터에 차용한 이유는 영화 속 이야기가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별빛과 달빛이 어우러진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임을 넌지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름다운 약혼녀 이네즈와 함께 파리를 찾은 소설가 길은 서로간의 취향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들로 인해 여행 내내 갈등을 빚습니다.
특히 안정적이면서도 돈 잘 버는 직업인 시나리오 작가의 위치를 포기하고 파리에 살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길의 소박한(?) 소망은 이네즈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길은 파리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이네즈의 친구 폴 & 캐럴 커플과 내키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네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폴 & 캐럴 커플과 함께 춤을 추러 가겠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캐럴은 자신은 민주적이므로 길이 춤추러 가지 않겠다면 연인인 폴을 이네즈에게 빌려줄 수 있다며...-_-; 댄스 파트너로 자신의 연인을 친구에게 잠시 양보(?)하는 것이 민주적인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상황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클래식 푸조가 도착한 곳은 파리의 사교 클럽 ! 이 곳에서 길은 그 동안 자신이 동경해 왔던 1920년대 파리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클래식 푸조를 타고 타임 슬립을 하게 된 것이죠.
사교 클럽에서 처음 대화를 하게 된 이 커플은 바로 스캇 & 젤다 피츠제랄드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순수 문학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해 모든 것을 버리고 소설을 쓰고픈 길 앞에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 중 하나인 스캇 피츠제랄드가 나타난 것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작가인 스캇 피츠제랄드가 말이죠.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길.
길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스캇 & 젤다 피츠제랄드 커플에 이끌려 1920년대 파리의 밤거리를 누비다가 또 다른 술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는 평소 동경해 마지 않았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를 만나죠.
남에게 절대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싶지 않았던(혹은 폴 같은 속물적인 인간에게 자신의 글이 평가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길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에게 주저없이 자신의 글을 봐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소설을 집필 중인데, 어네스트 헤밍웨이라는 거장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저라면 주저없이 길과 동일한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때 당시 길은 자신의 소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 자신이 쓴 소설을 가지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술집을 나왔으나,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방금까지 헤밍웨이와 대화를 나눴던 술집으로 되돌아 가지만 어느새 다시 현대의 파리로 돌아와 버린 상황.
하지만 밤이 되면 전날처럼 타임 슬립을 해 다시 헤밍웨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연인인 이네즈를 파리의 밤거리로 끌고 왔으나 클래식 푸조는 나타나지 않고, 이네즈는 짜증이 나서 호텔로 돌아가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이네즈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아 왜 어제처럼 클래식 푸조가 나타나지 않을까 골똘히 생각 중인 불쌍한 길.
하지만 전날처럼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길 앞에 클래식 푸조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헤밍웨이가 길을 맞아줍니다.
헤밍웨이가 길을 데리고 간 곳은 비평가인 거트루트 스타인의 집 ! 이 곳에서 길은 또 다른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길이 방문했을 당시 피카소는 거트루트 스타인에게 본인이 그린 작품에 대하여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에게 거침없이 비평을 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라니, 길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여성. 길의 인생을 바꿔버린 여성이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입니다. 둘 다 과거를 동경한다는 점에서는 통했지만, 안타깝게도 길이 동경했던 것은 지금 현재 길이 들어와 있는 1920년대, 그리고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아름다운 시대' 1870년대입니다. 길과 아드리아나의 비극적인 로맨스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
타임 슬립을 한 길 앞에 나타난 또 한 명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으로 유명한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답게 타임 슬립을 했다는 길을 100% 이해합니다. 실제로 이런 성격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살바도르 달리는 우리 앨런 감독이 일부러 코믹 컨셉을 위해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ㅎㅎ
1920년대 밤의 파리에서 다시 현재 낮의 파리로 돌아온 길은 이네즈오 함께 혼수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파리의 골동품 가게를 둘러보게 됩니다. 자신이 동경했던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길에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부질없는 시간일 뿐일 테죠?
길은 이네즈로부터 잠시 벗어나 조그마한 고미술상에서 콜 포터의 레코드를 구입합니다. 길이 콜 포터의 레코드를 찾은 이유는 타임 슬립을 하고 처음 방문하게 된 사교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있던 인물이 바로 콜 포터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들었던 콜 포터의 음악은 바로 'Let's Do It' ! 그 음악이 실린 레코드를 구입하고자 한 것이죠.
음악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 중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노래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배경음악을 듣고 있으면 정말 1920년대의 파리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
콜 포터의 레코드를 구입한 길은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중고책 노점상에게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을 구입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연애 기록을 남긴 것이었습니다. 불어를 모르는 길은 베르사유 궁전 가이드를 찾아가 통역을 부탁합니다. 참고로 가이드로 등장한 이 인물은 프랑스의 영부인이었던 카를라 브루니'입니다.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
아무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아드리아나가 책 속에서 자신의 연인으로 거론한 것은 피카소와 헤밍웨이. 하지만 미국 작가와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마법 같은 일이 본인에게도 벌어졌다며 거론한 인물이 바로 '길 펜더' 본인이었던 것입니다. 본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을 듣고는 얼이 빠진 듯 생각에 잠긴 길.
다시 한밤이 되어 1920년대로 돌아가 아드리아나와의 데이트를 즐기는 길. 이 데이트를 위해 온갖 험난한 과정을 거친 그였습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마치 실제로 파리에 와 있는 듯한 즐거움, 그리고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인물 묘사를 통해 1920년대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당시 느꼈던 설렘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배경 지식까지 쌓게 해 줬으니 말이죠.
실제로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이라는 회고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회고록을 통해 영화 속에 등장한 스캇 피츠제랄드에 대해서도 서술했다고 하는데, 무척 친한 관계였다가 나중에는 관계가 틀어졌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출간 중인데, 조만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와 다르게 헤밍웨이가 느꼈던 1920년대의 파리에 대해서, 그리고 헤밍웨이를 둘러싼 인간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 합니다.
그나저나 매혹적인 아드리아나를 연기한 마리옹 꼬띠아르는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네요.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도 동시에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미드나잇 인 파리'는 해외에선 작년에 이미 개봉한 영화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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