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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사회]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by 맨큐 200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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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습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절대 그렇지 않겠지만, 어렸을 적엔 저도 누구 못지 않게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아이였습니다. 어렸을 때에도 지금처럼 소심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다든가 하는 적극적인 제스쳐는 취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주변에 있는 책을 찾아서 끝내 호기심을 해소하곤 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름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어서 박학다식하다는 소리도 가끔 듣곤 했거든요. ^^;

그런데 최근에는 인터넷, 그리고 멀티미디어에 익숙한 생활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여유가 통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뻔한 핑계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책을 멀리하는 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뭐랄까, 삶이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나이에 걸맞는 진중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 같아 살짝 조바심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어린 시절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던 그 때 그 시절의 박학다식함을 되찾고 싶디고 했구요. 그래서 얼마 전 인터넷 서점을 통해 여러 권의 책을 주문했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입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드니 로베르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갖춘 촘스키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옮긴 것으로 이 세상에 진실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촘스키의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서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언어학자로 지금까지 약 70여 권의 저서와 1천 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생전 저술한 책이 약 500여 권이라고 하는데, 저서 숫자로만 따진다면 정약용 선생의 승리로군요. ^^;

촘스키가 미국의 양심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그의 능력이 언어학에서만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을 비롯해 철학, 인지과학, 심리학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역사, 사회, 문화, 사상 등 다방면에서 학문적 성과와 탁월한 성찰을 보여왔고, 그 때마다 주류 지식인 사회와 지배 권력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던 것이죠.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인 촘스키의 모든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의 능력만큼은 본받고 싶습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1999년 11월 노암 촘스키와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1년에서야 그 대화가 책으로 완성될 수 있었는데, 1999년에 이미 촘스키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치 2009년 현재의 시점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죠.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이게 정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루어진 대화일까?'하는 의구심이 여러 차례 들기도 했습니다.

촘스키는 이 책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는 커녕 주류 사회와 지배자들이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논리를 제공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고 비판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촘스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였습니다. 그 어떤 표현이든 억압되어서는 안 되며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촘스키는 나치 포로 수용소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든 사람들이 독일의 일방적 악행으로 인정하던 쇼아를 상대적 반응으로 분석한 글을 발표함으로써 비난을 받은 바 있는데, 촘스키는 그러한 의견마저도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포아송에 대한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촘스키 역시 그가 포리송의 반유태주의에 대해 동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했는데, 촘스키는 다른 이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과 다른 이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옹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어떤 생각이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볼테르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으로 인해 박해받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라는 말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듯 하죠. 실제로 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요. ^^;

그런데 현대 사회는 촘스키가 바라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사회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촘스키가 강조하는 것은 대중의 각성과 경계입니다. 지식인들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이 스스로 깨우치고 지배 계급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중이 대항해야 하는 지배 계급의 중심에는 거대 기업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거대 기업 중심의 경제 논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이 깨어나 여론의 압력이 더해져야 어떠한 변화든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이 촘스키의 견해였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촘스키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에 대해 상당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미국 경제의 위기에 대해 꿰뚫어 본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촘스키의 통찰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지식을 원용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지식인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예전에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일 처음 추천받아서 읽었던 책이 사르트르가 지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 책은 기본으로 읽었어야 한다는 말만 듣고 이해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읽었더랬죠.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말했던 지식인의 역할이란 바로 촘스키처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구요.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을 만나보고 싶으신 분? 노암 촘스키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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