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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사회]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by 맨큐 200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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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8점
TBWA KOREA 지음/알마

여러분에게 청바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분들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그냥 평상시 편하게 입고 다니는 여러 바지들 중 하나'라 답변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청바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제 생각이 그렇거든요. ^^;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심을 끊고 살았기에(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리바이스니, 디젤이니 하며 청바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일 때 전 어머니께서 사 주시는 이름 모를 브랜드의 청바지에 만족하며 입고 다녔더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때만 하더라도 교복을 입고 다녔던지라 청바지를 입고 다닐 기회가 흔치 않았으니까요. 주말에 외출을 하는 목적도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지, 여자를 만너러 갈 일은 전혀(!) 없었기에 유명 브랜드 혹은 제 체형에 꼭 맞은 청바지를 입는 등의 패션 따위는 제 관심사 밖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제가 청바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청바지 사회문화사로 세상을 읽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거든요. 청바지는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바지 중의 하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흔한 아이템이 되어버린 청바지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으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랬구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청바지가 이렇게 흔한 아이템이 되었다는 사실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이미 우리 사회는 청바지에 점령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청바지에 함축된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편하니까 입고 다니는 것이지만, 이렇게 청바지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회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있다는 것이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있을 테고,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라는 책은 중,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책을 손에 쥐고 나서 단 한 번도 떼지 않은 채 읽어내려간 최초의 책이었습니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했거니와 패셔너블한 편집 덕분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거든요. 퇴근길에 버스에서부터 읽기 시작했었는데,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를 걷는 내내 책을 가방에 넣지 않고 계속 읽으며 퇴근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중학교 때 한창 다독할 때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



알고 보니 이 책, TBWA KOREA라는 유명한 광고회사의 구성원들이 엮은 책이라 합니다. 감각적이고 독특한 편집이 눈에 띈다 싶었더니 책 편집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니 '책도 패셔너블하게 보여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TBWA KOREA의 7명의 신입사원인 차애리, 허진웅, 윤혜진, 김연후, 이상민, 조주연, 양희선 등이 글을 쓰고, 1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책에는 '사람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제가 실제로 겪어보지는 못했으니...^^;)인 박승욱 부장이 진행했으며, 또 다른 1명의 크리에이티브 디텍터인 박웅현 ECD가 총감독을 맡아 만들어낸 작품이라 합니다.

광고회사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의 톡톡 튀는 감성과 지적 호기심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약간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명 이 책의 내용을 채워넣는 일은 자신들의 본연의 업무와는 상관없는 잔업이었을 테니까 말이죠. 분명 본인의 업무와 병행하며 책을 만드느라 캐고생했을 7명의 신입사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책 표지에 적혀 있듯, 청바지 사회문화사로 세상을 읽어보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프래그머티즘에서 팍스아메리카나로, 제임스 딘에서 양희은으로, 노동에서 여가로, 미국에서 세계로, 실용에서 사치로, 마초에서 페미닌으로, 반항에서 제도권으로, 해방에서 구속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대량 생산에서 수제로...

미국의 광산 노동자들이 작업할 때나 입었던 청바지가 패션 아이콘의 중심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말이죠. ^^ 그리고 얼핏 생각해 봐도 맞습니다.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광산 노동자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싸구려 청바지가 이제는 몇십만원,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스러운 패션 아이템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그것도 아무렇게나 입는 옷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되는 아이템으로써 말이죠.



앞서 말씀드렸듯,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간혹 논리의 비약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산물이라 생각한다면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수준입니다. 참신한 읽을거리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들이 청바지만 입은 채 등장해 주기도 하고 말이죠. ^^;;;



서부 개척 시대의 프래그머티즘에서 태어난 청바지는 규격화된 대량 생산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고,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전세계를 장악했습니다. 청바지의 변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념을 장착함으로써 또 다른 변신을 시작했고, 보보스라는 새로운 숙주를 통해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 청바지는 이제 종교와도 같은 불멸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바이스, 디젤과 같은 청바지 브랜드들은 열렬한 신도를 얻게 된 것이죠. 청바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분명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청바지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금기시되는 패션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청바지와 넥타이는 동등하다라는 광고도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광고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청바지와 넥타이가 동등하지 않게 대우받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지위를 탄탄하게 구축해 온 청바지가 우리 사회에서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변신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해 나가겠죠.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인 우리들이 청바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가 스스로 자신을 빛내줄 인간을 고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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