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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roadcasting

하얀거탑 종영, 불멸의 장준혁을 기다리며..

by 맨큐 2007.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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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엔 별 생각 없었다.
며칠 전에 하나로텔레콤에서 한 달만 공짜로 이용해 보라고 제안해서
얼떨결에 설치한 하나TV가 놀고 있길래 테스트도 해 볼 겸 고른 것이 바로 '하얀거탑'이었다.
지금까지 방송됐던 수많은 드라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판이라고만 생각했다.
미국 드라마에 빠진 이후 한국 드라마에 눈길 주지 않은지 오래라
관심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장준혁의 죽음과 함께 끝난 '하얀거탑'
이 자리를 빌어 그 '하얀거탑'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012

담관암이 온 몸에 전이되어 이미 손 쓸 수 없게 된 상황.
성공을 향한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만 질주해 왔던
장준혁의 좌절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모든 시청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지만...
정말 너무 불쌍한 희재씨.
불륜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연인, 준혁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심정.
그 누구보다 아프고 슬펐으리라.





희재가 준혁에게 전해준 꽃을 전달하러 온 최도영.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준혁과 싸워야 했고, 그를 속여야 했으며, 또 잃어야 했던
최도영의 마음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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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20회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물론 매우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자의적인 선정이다.)
수술 참관실에 앉아 자신이 가장 빛나던 순간을 상상하는 장준혁.
실패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교만으로 가득찬 그의 모습은 참 싫었지만
수술대 앞에선,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찬 장준혁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죽은 지금에도 그를 잊을 수 없는 것일 테고...



0123

"가지마.."
"당신..오래도록 기억해 줄게.."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하지만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이들의 관계는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습이 추하게 기억되지 않음은 어찌된 일일까?
분명 내 가치관,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가치관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관계인데 말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그녀.
그 누구보다 장준혁을 잘 이해해 주고, 잘 알아주는 사람이어서
 미워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희재라는 캐릭터 자체가 발산하는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던 건지도...
불륜이어서 더욱 안타까웠던 희재와 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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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가까워오자 신경이 마비되어 신문을 제대로 들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 하고
신문을 거꾸로 보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신문을 읽고 있는 척 하는 장준혁.
어쩌면 자신을 우상으로 바라보는 후배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지도...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의 죽음.
드라마 주인공의 죽음에 '인생 무상'을 느낀다면 너무 허무한 일일까?
명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장준혁이라는 명함만이 그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0123

오경환 교수님께 남긴 편지를 통해 자신의 시신을 의학 발전을 위한 해부에 기증한 장준혁.
하지만 '시신 기증 유언장'보다 '상고 이유서'를 봤을 때 역시 장준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이른 상황에서도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특유의 독기 품은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일까?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드라마상에서 오경환 교수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부재 현황 표시를 '수술중'이라고 고치는 장면.
(의료사고로 인해 부검을 했을 때엔 저런 장면이 안 나온 것 같다.)
 
해부대에 오른 장준혁이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내 죽음은 완벽했어"라고...
 
 
 
1. '하얀 거탑'을 선택한 이유
 
'하얀거탑'은 크게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외과 과장 선거를 둘러싼 암투'에 관한 에피소드와 '의료사고를 둘러싼 법정 분쟁'에 관한 에피소드.
'외과 과장 선거' 에피소드를 통해 끌어모은 시청자들이
지지부진한 '법정 분쟁' 에피소드에서 많이 떨어져 나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얀거탑' 20부를 5일만에 다 볼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첫째, 우리나라의 싸구려 드라마에 단골 소재처럼 등장해서 시청자를 농락하던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재벌과 사랑에 빠진 신데렐라'와 같은
식상한 소재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
신분 상승을 위해 부유한 의사 딸과의 결혼을 감행한 가난한 천재 외과 의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둘째, 아주 예전에 재밌게 봤던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본 이후
의학드라마에 목말라 있었다는 점.
'의과의사 봉달희'는 왜 안 보느냐고 묻는다면, 그 쪽 주인공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셋째, 첫번째 방송분에 등장한 희재씨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끝까지 안 보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점.
김보경이라는 여배우의 재발견이다.
영화 '친구'에 등장했을 때도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이라고는 생각 못 했었는데...
 
 
 
2.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
 
수술의 천재, 명인대학교병원 외과의사 장준혁.
그는 자신의 실력만으로 그 위치에 올랐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만큼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을만하고,
스스로 자신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소유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인 최도영과 달리 자신의 뛰어난 실력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인물이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장준혁.
그 첫 단계로 명인대학교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10년간 모셨던 스승을 배신하고,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한다.
(물론 그 스승이 장준혁의 인간성을 핑계로 외과 과장 자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방해공작을 펴기는 하지만...)
어렵사리 외과 과장이 되고부턴 과장이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독선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세계 의학 학회 회장 부인의 수술 때문에 자신이 집도했던 환자의 후유증을 무시하는 등
그의 독선적인 행보는 결국 의료사고 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고...
 
여기까지만 봐도 장준혁은 참 못됐다.
자신의 이익에 관계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철저하게 계산해서 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행동하는 인물.
비록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절대 악인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 가능한 리얼한 악인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하얀거탑'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얀거탑'이 끝나고 난 지금, 이상하게도 장준혁을 미워하는 목소리는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를 애도하고, 그를 안쓰러워하고, 그를 그리워하며, 그를 살려내라는 목소리만이 들릴 뿐.
 
도대체 왜?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워해야 마땅할' 장준혁을 이렇게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일까?
주인공이 암으로 죽어서 불쌍하니까?
 
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장준혁만큼이나 영악하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장준혁의 죽음을 애도할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장준혁의 주요 인간 관계
 
(1) 장준혁 & 이주완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길래..."
장준혁과 이주완 전임 외과 과장의 관계는 저 문장 하나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이주완 과장 퇴임 후 차기 외과 과장 자리는 당연히 자기 것이라 생각한 장준혁은
10년 넘게 이주완 과장을 충성스럽게 모신다.
하지만 이주완 과장 퇴임이 가까워오자 이제 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에 방심을 한 것이었을까?
이주완 과장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서 멀찌감치 자신을 따돌린 장준혁에게 질투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장준혁의 능력과 젊음, 그리고 병원 내에서 점점 커지는 그의 지위를 질투한 이주완 과장의 마음을 미처 생각치 못 하고
끝없이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루스 마냥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다가 이주완 과장에게 한 방 먹고 만다.
이주완 과장이 노민국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외과 의사를 명인대학교 외과 과장 차기 후보로 내세운 것.
 
이 때부터 스승과 제자였던 이들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스승은 제자의 앞길을 막기 위해 애쓰고, 제자는 스승의 발목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제자에게 패배한 스승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말로 변명을 한다.
자신의 속좁은 행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성이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장준혁에 대한 충고였으리라.
 
그렇게 비틀어질대로 비틀어져 다시는 화해하지 못할 것 같은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장준혁은 자신의 암 치료를 위한 수술 집도의로 이주완 과장을 선택한다.
비록 밉지만 오랜 시간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스승에게 자신의 최후를 맡기면서 먼저 화해를 청한 셈이다.
 
장준혁의 죽음으로 인해 그 화해가 완성되지는 못 했지만,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수술 끝에 회복한 장준혁과 수술에 성공한 이주완 과장이 극적인 포옹을 하는 억지 감동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이주완 과장이 수술 제의를 받아들인 순간 둘의 화해가 마무리된 것인지도 모르겠고...
 
 
(2) 장준혁 & 우용길
 
장준혁이 뛰어난 의학 지식과 의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우용길은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과 정치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용길은 그런 그의 정치적 능력과 동창회장 유필상의 지원에 힘입어 부원장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인물이다.
 
처음 우용길은 장준혁을 그저 실력 하나만 믿고 천방지축 날뛰는 건방진 의사 정도로만 치부했다.
하지만 장준혁이 우용길에게 평생 '자기 사람'이 되어 주겠다는 맹세를 함으로써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우용길은 노련하다.
'허허' 웃으면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뱃 속에 능구렁이 9마리 정도는 감추고 있을 것 같다.
이런 그와 손을 잡은 장준혁에게 다른 길이라곤 없다.
무조건 끝까지 그와 함께 하는 것 뿐.
 
하지만 장준혁은 명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자리에 만족하지 못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우용길의 정치적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잠깐 한 눈을 팔게 된다.
'자기 사람'이 되어주겠다는 장준혁의 말을 믿고 장준혁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우용길에게
그런 장준혁의 행동은 서툰 배신으로 보였을 테다.
가차없이 장준혁을 향한 공격에 나서게 되고 결국 장준혁은 또 다시 우용길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장준혁에게도, 우용길에게도 자신의 권력 확보를 위해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장준혁의 죽음 앞에서 우용길은 "그럼 다 끝났네"라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아마 병원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지위 보전을 위해 또 다른 외과 과장 후보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지만,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다면 끝없는 냉정함을 보이는 인물.
 
 
(3) 장준혁 & 민충식
 
민충식은 자신이 못 다 이룬 권력에의 꿈을 사위를 통해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장준혁을 지원해주는 인물이다.
"돈이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생활신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의 생활신조는 장준혁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
돈의 힘으로 장준혁을 외과 과장으로 만들어줄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유필상과 우용길을 포섭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오경환 교수처럼 돈의 힘이 안 통하는 특이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병원의 권력 다툼에 뛰어든 이후 항상 권모술수에 능한 어른들 틈에서 고생하던 장준혁에게 있어
민충식은 그나마 유일하게 편한 어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언제든지 뒤에서 수습해 주는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장준혁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준혁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권력욕이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보다.
 
 
(4) 장준혁 & 최도영
 
드라마상에 등장하는 장준혁의 유일한 친구.
학부 시절 라이벌 관계였으나 내, 외과로 갈리고부터는 친구라고 부르기도 어정쩡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실력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최도영의 말에 장준혁은 답답함을 느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외과 과장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장준혁의 말에 최도영은 속물근성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둘의 가치관과 자라온 환경이 너무도 다른 것을...
 
장준혁이 죽기 직전 준혁의 손을 붙잡고 오열하는 최도영의 모습은 너무도 슬픈 장면이었다.
친구랍시고 늪 옆에 있었지만 속깊은 말도 다 못 했는데, 먼 곳으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
 
 
(5) 장준혁 & 강희재
 
가진것도 없고 바탕도 없었기에, 오르고 싶었던 그 곳으로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비지니스를 해야 했던 장준혁.
결혼도, 일도, 그 밖의 모든 것들에 자신의 열정을 다해 도박을 하듯 살아야 했던 가엾은 삶.
누구에게 자기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도 아내에게도 직장의 동료인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가녀린 내면의 이야기들.
희재는 그런 준혁에게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 동안 드라마에서 수많은 불륜 관계를 보았지만, 유일하게 이 둘에게만은 비난을 퍼부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세컨드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 앞에 나서지 못했던 이 여인에게 어떻게 욕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나 쿨할 것 같은 그들의 관계.
준혁의 죽음을 앞에 두고 희재의 "가지마"라는 말 한 마디.
그 동안 쿨한 척 하며 삭혀야 했던 아쉬움을 털어버리기 위한 마지막 절규.


 
4. 장준혁을 위한 변명
 
장준혁.
보통 사람은 아니다.
아니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더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가 없다.
왜일까?
 
(1) 가지지 못한 자의 절박함
 
장준혁은 어렵게 자랐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성공 하나만을 위해 내달렸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겨우 외과 과장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 셈이다.
 
반면 준혁의 친구 최도영은 다르다.
최도영은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도영이 말하는 것처럼 그저 연구만 열심히 하고 실력만 키우면 된다.
과장 자리는 그 후에 집안 배경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까...
 
오지랖 넓은 이윤진도 마찬가지다.
3대째 의사를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에서 유복한 삶을 이어왔다.
그래서 사회운동한답시고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닌다.
(오지랖 넓은 이윤진에게 불만이 많았다. 표현이 거칠더라도 이해를...)
 
하지만 장준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믿을 거라곤 오로지 실력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독해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민수정과 결혼했고, 스승도 배신했다.
한편으로 라이벌인 노민국에게 무릎을 꿇고 외과 과장 자리를 포기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정말 처절하게 성공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그렇게 독하게 살아왔는데 '암'이란다.
이제 어느 정도 힘들었던 삶을 보상받을 차례인데 죽어야 한단다.
제대로 된 성공 스토리를 써 보기도 전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장준혁의 삶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2) 미숙한 인간 관계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왔기 때문일까?
장준혁에게는 믿고 의지할만한 친구가 없다.
앞에서 장준혁을 둘러싼 주요 인물들 중에는 최도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장준혁이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 비지니스적 거래를 통해 엮인 관계들 뿐이다.
 
그 와중에도 장준혁은 순간순간 좀 더 힘세보이는 쪽과 수시로 동맹 관계를 맺고 끊으며 위기를 자초한다.
오로지 성공 하나만을 바라보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기에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데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친구도 없다.
아군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어느샌가 적군이 되어 있다.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겪어야 했던 시련 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3) 우리 시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
 
'하얀거탑' 종영후, 어느 기사에선가 이렇게 말했다.
성공을 향해 내달렸던 장준혁은 우리 시대 30~40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라고...
 
맞다.
맨 손으로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30~40대 샐러리맨들은 장준혁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켰을 것이다.
 
가난해서 공부도 하기 힘든 시절.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자식을 굶기지 않기 위해 자신은 굶더라도 도시락을 싸주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 어머니께 고마워서 나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는 어린 장준혁.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제는 어느 정도 살만해졌음에도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어머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 하며 고마움조차 표현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장준혁.
 
이 모든 것들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 본인의 얘기였던 것이다.
나를 포함해 그들 역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 이기적이고, 교만하면 어떠냐고...
그 동안 어려웠으니 이 정도의 부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일이기에 장준혁을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5. 불멸의 장준혁을 꿈꾸며...
 
'하얀거탑'은 끝났다.
연장 방송도 하지 않았고, 스페셜방송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연장방송을 하지 않은 채 정확하게 20화로 끝내고 스페셜방송을 하지 않는 것은
제작진의 강력한 결단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자칭타칭 국가대표 연애선수 문정혁,
여자를 우습게 아는 이 남자의 버르장머리를 끝장내 버리겠다는
 엉뚱 파격 숫처녀 정유미와 정면으로 충돌하다!"
 
(예고 자막에 나온 그대로이다. 글자 하나 바꾸지 않았다.)
 
눈물나는 마지막 장면에 <케세라세라>라는 드라마에 대한 위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광고 자막을 내보내고
장준혁의 죽음으로 끝난 드라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코미디 같은 새 드라마 예고편을 내보내는 만행을 봐서는
MBC 내부 누군가의 의지가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김명민 씨 인터뷰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MBC 최문순 사장이 '하얀거탑'을 응원하기 위해 제작진에게 방문 의사를 보였으나 제작진에서 2번이나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사장이 어쩔 수 없이 제작진에게 알리지 않고 깜짝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김명민씨가 최사장을 보조 출연자로 잘못 알고 오해했던 해프닝이 있었단다.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면 그 누군가가 '하얀거탑'을 싫어하게 될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 ^^
 
김명민 씨의 또 다른 인터뷰에는 '하얀거탑' 막방을 보고 하마터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뻔 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것이겠지만 한 번 듣고 넘길 수만은 없는 얘기이다.
실제 78년 일본판 드라마 ‘하얀거탑’이 방영 당시 종영을 앞두고
드라마의 주인공인 타미야 지로가 엽총으로 자살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만큼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음을 보여준 얘기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주인공의 죽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 지금,
실제 그러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김명민씨는 시청자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을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어서 김명민씨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하얀거탑'을 보고 난 지금은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하얀거탑 2 - 부제 : 불멸의 장준혁'이 제작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하얀거탑'마저 코미디가 되어버릴 테니 참기로 하자.
정말 오래도록 기억해줄만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당분간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장준혁을 제대로 그려내는게 유일한 목표였다는 안판석 감독님의 의도가 제대로 적중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하얀거탑'에 출연해 열연을 펼쳐준 모든 연기자분들, 그리고 '하얀거탑'을 제작하느라 힘써준 모든 스탭분들께 감사를...^^
나머지 모든 배역을 맡아 주신 연기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데 지금은 너무 졸려서...;;;
아무튼 '하얀거탑' 캐스팅 역시 최고였다.
그 누구도 어색한 부분이 없었을 정도로...





(출연진 이미지 출처 : dcinside 하얀거탑 갤러리, '우용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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