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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용서받지 못한 자 (The Unforgiven, 2005)

by 맨큐 200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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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대학 졸업 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
나와 같은 79년생 영화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군대의 실상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점,
그리고 김용건씨의 아들 하정우, 서인석씨의 아들 서장원의 연기 대결(?)을 볼 수 있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애초 '용서받지 못한 자'는 엉뚱한 사건으로 인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영화였다.
예산 부족으로 군부대의 촬영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윤종빈 감독이 실제 시나리오 내용을 밝힐 경우 군부대의 활영 협조 거부를 우려해
영화 내용이 상,하급자의 전우애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허위 시나리오를 제출해
군부대의 전폭적인(?) 촬영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되고 보니
우리나라 군대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내용이었으니
군 당국자의 당혹스런 심정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예상되고도 남음이다.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켰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결국 군 당국에서는 윤종빈 감독을 고발하기에 이르렀고..
윤종빈 감독이 애초 졸업작품으로 만든 것이라
제작 당시에는 미처 극장에 상영되리라 예상치 못 했다는 변명을 했고
군 당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를 했기 때문에
고발이 취하되기는 했지만, 씁쓸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군대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그리기 위한 영화임에도
자신 역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방법으로 촬영 협조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당한 목적은 정당한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승영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시작한다.
역시나 신병이 전입될 때면 시작되는 할 일 없는 왕고의 '신병 데리고 놀기'
대학 물 먹은 승영에게 여자를 소개받고자 시도하다가 물 먹은
말년 병장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또 다른 주인공 군기반장 태정의 후임병 길들이기 쓰리 콤보가 작렬하는 장면.
이른바 '병 주고 약 주기'

군대에서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후임병에게 아무리 잘 해 줘도 소용없다고..
결국 후임병의 뒤통수 때리기에 당하고 마는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이 격언에 의하면 태정의 후임병 길들이기는 100점 만점이다.
 
평소에 잘 해 주다가도 후임병의 실수에 한 번 화를 내는 고참은 무시당하거나 욕을 먹지만
평소에 후임병에게 엄하게 대하다가 가끔씩 살갑게 대하면
인간성 좋은 고참으로 인식된다는 안타까운 사실.
억지로 군대에 끌려와 동기 부여 없이 의무복무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여지없이 적용될 수 밖에 없는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말년 병장 태정과 이제 갓 입대한 승영은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 사이.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이 때만 해도 이들은 나중에 닥치게 될 불행을 알지 못 한다.
 






태정이 자신의 부사수와 새끼 부사수에게 업무 및 군생활에 대해 가르치는 장면.
첫번째, 전투화에 불광을 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두번째, 신병에게 너무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는 충고를 승영에게 해 주고 있다.
세번째, 어리버리 지훈에게 전화 받는 방법을 전수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군대 있을 때 전화받기가 너무나 싫었던 기억이 난다.
'통신보안! XX연대 X대대 지통실 병장 XXX입니다.'
어떤 전화를 받든간에 입이 닳도록 붙여야 했던 문구.
덕분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전화를 받다가 엉겁결에
친구들에게 '통신보안'을 외치는 실수를 하기도 했었다.
행정병들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훈.
답답한 태정은 지훈을 때려도 보고, 꼬집어도 본다.
이 정도의 구타는 군대에서는 애교 수준이다. ^^
하긴 요즘 군대에서는 구타가 사라졌다고는 하더만..





슬슬 군대조직이 조장하는 폭력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승영으로 인해
태정 역시 고참을 포함한 부대원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아직까지는 태정이 승영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만..







군대 내무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점호 시간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점호 이후 '결산'이라 해서 비공식적으로 고참들이 후임을 갈구는 시간이 있었다.
청소 상태부터 시작해서 후임들의 평소 실수에 대한 광범위한 폭격이
자행되는 시간이기에 후임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에 일개 이등병이 이빨을 보이며 웃는다는 건
소위 말하는 '무개념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왕고의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 떄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등병, 일병 때만 해도 이런 시간이 왜 필요한 것일까에 대해 수차례 고민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게도 후임이 생길수록 그러한 고민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군대라는 조직에 점차 익숙해질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 점호 시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점호 시간 이후
어둠을 틈탄 상병 7~8호봉의 '내 밑으로 다 집합'이다.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하나씩 깨질 때 숨막히는 그 긴장감이란..







승영의 저항은 결국 하극상에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승영은 태정의 도움을 바라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태정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승영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 동안 참아왔던 고참들의 갈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군대 문화를 바꿔보고자 했던 승영은
짬밥이 늘어나게 되면서 결국 백기를 들고 만다.
승영이 고참에게 A급 전투화를 상납하면서 고참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모습.
기존 권력의 위계질서에 편입하고 마는 저항의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장면이다.
 




승영이 군대조직에 적응해가는 사이 우리의 어리버리한 지훈은 계속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애인과의 문제로 인해 일에 집중하지 못 하고, 결국 고참에게 욕을 내뱉기까지..
어찌보면 승영이 지훈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변해버린 승영, 변심할 낌새가 보이는 여자친구.
지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지훈은 걱정하던대로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실제 군대에 있을 때도 참 많이 봤던 모습.
실연을 당했음에도 군대에 묶여 있는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군인을 참 슬프게 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고작 애인과의 이별 때문에 자살을 택하다니, 나약한 녀석이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되었는데
원본에서는 지훈이 고참으로부터 성추행당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성추행 장면에서 지훈의 리액션이 너무 리얼해서 삭제하기 아까웠다는 후문.
 
어쨌든 승영의 변심, 여자친구와의 헤어짐, 고참의 성추행.
이 모든 것이 지훈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훈의 자살은 승영에게도 견딜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지훈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느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변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던 것일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기 위해 친구이자 고참인 태정을 찾아오지만
 아주 오래 전에 제대한 태정에게 군대 안의 일은 이미 관심 밖이다.
승영이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 몰라 승영이 귀찮기만 한 태정.
그리고 승영의 선택.
 
과연 '용서받지 못한 자'는 누구일까?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군대 입대 문제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면제자는 제외)
그 누구도 '군대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설마 그것이 여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된다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든 기피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은 곳이지만,
이런 논란들은 핵심적인 핀트를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최전방 GOP에서 군생활을 해 본 경험자의 입장에서 어줍잖게 판단하자면
위계질서에 입각한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 성추행의 문제는
분명 시스템상의 허점에서 기인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말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적어도 그러한 제도상의 허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받을만 하다.비록 '훈련'과 '작업' 묘사가 생략되어 있긴 하지만
군대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내무생활', 즉 인간관계에 기인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군생활의 실상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주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2000년 군생활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영화에 등장한 부대는 파라다이스~)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군대는 여전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
군 수뇌부는 이러한 문제가 병사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군생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 하는
자신들이라는 점을 하루라도 빨리 자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찍기 위해 허위 시나리오를 제출하지 않아도
떳떳하게 허용할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받고자 한다면 말이다.

앞으로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예비 입대자들.
군대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여성들.
군 시절 추억을 곱씹어보고자 하는 예비역들.
이 모든 이들에게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p.s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감상한다면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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