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의 두번째날 아침. 드디어 하르츠 산맥으로 떠나는 날입니다.
하르츠 산맥으로 출발하기 전에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시 한 번 정독해 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거창한 목표가 무색하게 다운받아 갔던 전자책의 앞부분 몇 페이지만 읽어보고 트래킹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하르츠 산맥을 향한 첫 여정을 시작한 새벽의 베를린 하늘. 저 멀리 베를린 TV타워가 보입니다. 하르츠 숲은 독일 중부에 위치하며,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등장하는 자연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트래킹을 출발하기 전, 친구와 함께 트래킹 중에 먹을 간단한 샌드위치를 준비했습니다.
신선한 치즈와 살라미, 고소한 곡물빵을 곁들인 샌드위치를 보니 새삼 유럽에 와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른 아침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된 간식만으로도 이번 트래킹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긴 했습니다만...
베를린 중앙역에서 출발한 기차 안 풍경. 출근 시간이어서인지 커피 한 잔과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기차는 이내 도시를 벗어나 초록빛 들판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여행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비를 머금은 촉촉한 공기와 함께 트램을 기다리는 순간, 작은 도시의 여유로운 풍경과 다르게 이 비가 계속된다면 앞으로의 트래킹이 수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비가 그치길...
점점 숲이 가까워지는 바깥 풍경.
트램에서 내려 하르츠 산맥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반짝입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안개가 자욱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걷는 순간, 신선한 숲내음과 바람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어디에선가 숲 요정들이 나타나 재잘거리며 따라올 것 같은 분위기죠?
트래킹 도중 만난 작은 마을은 독일 전통 가옥으로 가득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순간, 그곳의 조용한 일상이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이 때까지는요. ㅎㅎ
광산이 있었던 마을인 듯 합니다.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풀과 나무의 향기가 짙어졌습니다. 나무 벤치에는 사람이 앉은 시간이 꽤나 오래 지났는지 이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자연이 가꾼 숲길의 흔적.
다양한 새소리와 도롱뇽, 민달팽이 같은 작은 생명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르츠 숲은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습니다.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외부의 소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주변에는 새소리, 그리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비가 온 직후여서인지 물소리가 더욱 거세진 듯 합니다. 괴테가 이곳을 걸으며 파우스트의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연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초록빛 풍경이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오솔길은 마치 끝이 없는 미로처럼 보였고, 걷는 동안 느껴지는 평온함은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었습니다.
트래킹 중 허기가 질 때쯤, 준비해온 곡물빵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소박한 식사였음에도 숲 속에서 즐기는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발견한 나무로 만든 사다리. 무엇을 하기 위한 사다리였을까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잘려나간 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습니다. 독일의 산림면적은 전체 국토면적의 약 31% 정도 수준인데, 이렇게 낮은 산림비율을 높이기 위해 꽤 오랜 기간 노력해 왔다고 합니다.
19세기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무단 벌채로 인해 숲이 황폐해졌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숲을 관리하고 가꾸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목재 수요량의 거의 전부를 자급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잘 가꿔진 빽빽한 나무 숲 덕분이겠죠?
음, 그래도 여긴 너무 많이 벌채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ㅎㅎ
길을 걷다 보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웅장한 나무들 사이로 들어섰습니다. 이 거대한 나무들은 하르츠 숲의 깊은 역사를 간직한 존재들인 것만 같습니다.
트래킹 중 만난 오래된 벽돌 건물.
한때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을 이 공간은 이제 자연 속에서 흔적만 남긴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Auf Wiedersehen(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지..ㅎㅎ
숲길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낸 작은 마을은 마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했습니다. 빨간 지붕과 화려한 꽃이 놓인 창문, 골목길이 어우러져 독일 전통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미니 분수 조각상.
마을을 지나 또 새로운 숲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길이 끝나기는 하겠죠? ^^
벌채한 목재를 운반하기 위한 트럭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강가를 따라 걷는 중.
트래킹 중 다리가 아파 잠시 푸른 초원에 누워 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이 살랑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주고 싶은 컨셉샷이었는데,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지는 않네요. ㅎㅎ
하르츠 지역 특유의 고즈넉함과 자연의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었던 숲길.
이 순간만큼은 판타지 속 등장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을 입구에 설치된 "Willkommen" 표지판. 드디어 하르츠 트래킹 중 첫번째 숙소가 위치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의 건물 여기저기에 마녀 인형이 걸려 있습니다. 브로켄 산에 사는 마녀들이 저렇게 생겼던 것일까요?
우리와 다르게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들.
이제 곧 숙소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기념품 가게의 창문에 마녀 모형과 빗자루 등이 전시되어 있어 하르츠가 독일 내 마녀 전설의 중심지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브로켄 산에 사는 모든 마녀들을 모아놓은 듯 합니다.
드디어 호텔 도착. 트래킹 첫째날이라 체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꽤 먼 곳까지 걸었더니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난 후 샤워할 생각도 하지 못 한 채 방전된 상태 그대로 침대에 한참 동안 누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슬슬 배가 고파져서 여기저기 아픈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햄과 소시지, 감자 퓌레와 바삭하게 튀겨진 슈니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 골아떨어졌습니다. 맥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말이죠. 첫째날부터 너무 무리하게 걸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
다음날, 과연 체력을 회복한 상태로 트래킹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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