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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_Europe/Germany

독일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베를린.

by 맨큐 201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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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보는 커리부어스트의 환상적인 맛에 빠져 있다가, 일단 친구 집으로 가서 짐을 정리한 후 베를린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혼자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봤다고는 해도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는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베를린에서는 친구 덕분에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선지 긴장이 조금은 덜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친구는 가이드 한다고 힘들었겠지만..^^;



친구 집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었던 친구는 베를린 내의 모든 교통수단을 무료로(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의 등록금 - 교통비가 포함된 - 을 낸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루한 관광객 신분이었던 저는 베를린 원데이 티켓을 구입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베를린을 돌아다니는 동안 버스 혹은 지하철에서 티켓 검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 불시에 티켓 검사를 했다가 무임 승차가 확인되면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부과된다고 하니 혹여나 편법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생각은 하지 마시고,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좋을 듯 합니다.



집 근처의, 폭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건물.



친구 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다음날 시작할 하르츠 국립공원 트레킹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전 간단한 트레킹이라 생각하고 등산복, 등산화 정도만 챙겨갔는데, 친구 혼자서 트레킹 동안 먹을 간식부터 시작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더라구요.



트레킹 준비를 대강 마무리하고 베를린 시내 관광을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려고 지하철을 타러 가니 전쟁으로 인해 폭격을 당하기 전 온전한 상태의 건물들이 벽면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 역. 5월이라 초록초록 합니다.



역을 빠져나와 조금 걸어서 목적지였던 브란덴부르크 문에 도착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 통일 이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선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역사적인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본 곳이라고도 합니다.



마차를 타려는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마부 아저씨. 땡볕에 마차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전에는 왕족 및 일부 허용된 인원들만 브란덴부르크 문 아래로 걸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나 막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냥 웅장하기만 한 개선문에 불과한 것 같은데 이게 왜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을까 의아했는데, 나중에 좀 더 알아보니 브란덴부르크 문 자체가 독일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30년 전쟁 이후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평화의 상징으로써 베를린의 새로운 관문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건축물답게 건설 당시에는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평화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가 조각되었는데, 프로이센 군대를 박살낸 나폴레옹이 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개선식을 진행한 후, 문 위의 에이레네 조각상을 파리로 가져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프로이센이 다시 파리를 점령하면서 조각상을 베를린으로 환수해 왔는데 이 때부터 브란덴부르크 문은 평화의 상징이 아닌 승리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여신상도 평화의 여신인 에이레네에서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쳐 2차 세계대전 즈음에는 나치에 의해 히틀러의 수상 임명을 축하하기 위한 촛불행진 장소, 히틀러의 생일파티 퍼레이드 장소 등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결국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이 이 문을 통해 베를린에 입성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때와 같이 독일인들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또 다시 패전의 상징처럼 느끼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냉전 시대로 돌입하면서 동독이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우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독에 의해 검문소로 활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가, 독일 통일 이후에야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그야말로 독일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건축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 브란덴부르크 문의 위상이 또 어떻게 변화해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왼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면 독일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베를린 국회의사당이 나옵니다. 베를린에 오니 특이하게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이 보게 되네요. 아마 이래서 독일 여행을 주저했었나 봅니다. ^^;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국회의사당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겠죠? 물론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공원에는 국회의사당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과 산책삼아 나들이 나온 거주민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네요.



베를린 국회의사당 역시 브란덴부르크 문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1894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니만큼 1791년에 만들어진 브란덴부르크 문에 비하면 아직 경험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청년 수준에 불과하다 할까요..그런데 브란덴부르크 문도 그렇고, 베를린 국회의사당도 그렇고 건축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딱 독일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베를린 국회의사당 전면부에 새겨진 'DEM DEUTSCHEN VOLKE' 문구. '독일 국민에게'라는 의미로, 1차 세계대전으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로 새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위로 보이는 웅장한 유리 돔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돔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독일 통일 이후 영국의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에 의해 지금의 유리 돔으로 재건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고 하네요. 유리 돔 안쪽으로 본회의장을 볼 수 있어서, 투명하고 개방적인 국정 운영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 하구요. 유리 돔 안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꽤나 멋져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미리 예약도 하지 않았던 데다가 시간도 없어서 내부 관람은 패스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베를린 명소들을 걸어서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의 주요 명소를 코스로 도는 100번 혹은 200번 버스를 탑승하시면 저희처럼 말베를린에서 '주마간산(走馬看山)'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첫번째로 본 베를린의 명소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였습니다.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985년 완성된 기념 건물인데,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베를린의 번화가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기 위해 보수하지 않고, 훼손된 상태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폭격맞은 상태의 모습으로 인해 '썩은 이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썩은 이빨을 뽑거나 치료하는 대신 옆에 육각형 모양의 교회 건물을 새로 지어 교회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조각으로 인해 유난히 눈에 띄던 전승기념탑이 보입니다.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전승기념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꼭대기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상. 전승기념탑은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볼법한 스팟인 것 같았지만, 그냥 버스 타고 휙휙 지나가면서 친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베를린 시내 관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ㅎㅎ



건물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베를린 TV 탑'.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전체 높이는 368m라고 합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에서 자신들 체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엄청난 높이로 만들어 베를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겠지만, 베를린과 어울리는 디자인은 아닌 듯 합니다. 남산타워랑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구요. 중간 즈음에 있는 구 모양의 전망대 위층에는 30분마다 1번씩 회전하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합니다. 남산타워가 따라한 건가 봅니다.



조금 더 이동하니 검게 그을린 듯한 벽면을 가진 웅장한 건물이 등장합니다. 벽면이 그을려 있어 그렇지,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것 같은데,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기 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화려한 모습이었다 하니 원래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베를린 주요 스팟을 버스로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근처에서 맥주 축제(?)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렇게 걸어다니며 핫도그를 파는 분도 계시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더라구요. 한 개에 1.35유로인 핫도그보다는 햇빛을 가려주는 우산 거치대가 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는 로데오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인인 듯한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소 등 위에서 버티고 있는 여성의 모습.



잠시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맥주 한 잔 하면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에 왔으니 베를린 전통 맥주를 마셔야 하지 않겠냐며 주문한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 핑크색은 산딸기 맛이고, 녹색은 한국어로도 처음 들어보는 선갈퀴풀맛이라고 하네요. 색깔로 봐서는 맥주보다는 칵테일 혹은 불량식품에 가까워 보입니다. 맛 역시 맥주라고 하기엔 살짝 달달했던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광장에 있는 만국시계탑. 아래 기둥 부위를 보면 베를린 현지는 저녁 6시 10분이었습니다. 평양, 도쿄, 서울이 1번에 위치해 있는 걸 보니 한국은 새벽 1시 10분 정도였겠네요.



자전거의 천국답게 거리 여기저기에 대여용 자전거들이 거치되어 있습니다. 베를린에 처음 도착해 친구에게 처음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자전거 도로로 걷다가 자전거랑 부딪히면 보행자가 손해이니 절대 자전거 도로로 걷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베를린 내의 거의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동차 도로, 자전거 도로, 인도가 구분되어 있는 만큼, 각자의 영역 내에서만큼은 최대한의 이동권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인가 봅니다.



베를린 박물관 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베를린 구 박물관(Altes Museum).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을 모델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그 모양새에서 고대 그리스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실제로 내부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환희의 정원(루스트가르텐)을 가운데 두고 베를린 대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베를린 구 박물관. 날씨 좋은 날이면 잔디밭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하는데,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도 햇빛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베를린 구 박물관 앞에는 제단 위에 놓여진 커다란 접시 같은 형태의 장식물이 놓여 있는데, 실제 고대 시대에 사용된 욕조를 가져다 놓은 것이라 합니다. 박물관 문 닫을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욕조 위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네요. 



맞은편 베를린 대성당 잔디밭도 마찬가지 상황. 키스를 나누는 연인도 보이네요. ㅎㅎ



잔디밭에 누워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커플.



버스를 탄 상태에서 본 때보다 훨씬 더 웅장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베를린 대성당.



어느 나라에서건 시원하게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는 어린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인 듯 합니다.



오후 늦은 시간의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푸른빛의 조각들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네요.



박물관 섬 안내 표지판. 박물관 섬에 있는 5개의 유명한 박물관 중 가장 오래된 베를린 구 박물관 외에도 보데 박물관(BODE MUSEUM),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 GLAERIE), 노이에스 박물관(NEUES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 등이 위치해 있습니다.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박물관 섬.



환희의 정원(루스트가르텐) 표지판 아래서 환희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커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린카, 쏘카 등등의 카쉐어링 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베를린을 여행할 때 당시(2014년)에는 카쉐어링의 개념조차 낯설었는데, 베를린에 살고 있던 친구는 이미 카쉐어링 서비스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베를린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저렴한 요금으로 카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출발지와 도착지가 달라도 추가 요금을 낼 필요없이 정확히 이용한 거리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는 시스템이 매력적이더라구요. 물론 우리나라와 베를린의 도시 규모라든가, 교통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겠지만요.



원래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까지 이동할까 싶었으나,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태라 자전거는 무리겠다 싶어 자동차를 선택했는데, 처음 이용하는 카쉐어링 서비스였음에도 엄청 편리해 보이더라구요. ㅎㅎ 물론 친구가 운전한 덕분이기도 하겠죠? ^^;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이용한 자동차는 근처 주차장 아무 곳이나 주차해도 됩니다. 다양한 그라피티들로 장식된 베를린 벽화들. 대부분 그라피티들은 그냥 장난스럽게 그려놓은 듯 보이긴 했지만, 나름 유명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고 하니, 한 번 찾아봐야겠죠?



본격적으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전에 근처 케밥집에 들러서 밥부터 먹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우리나라 김밥천국 마냥 케밥집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케밥이 처음 유럽에 소개된 것은 1970년대 베를린으로 이민 온 터키인들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를린에 케밥집이 많은 것이라 하더라구요. 물론 케밥이 터키 음식이긴 합니다만, 유럽 사람들 기준으로는 베를린이 유럽식 케밥의 원조일 수도 있겠네요. ㅎㅎ



얇게 썰린 고기가 듬뿍 담긴 케밥.



케밥과 함께 즐겼던 클럽 마테. 이것 역시 처음 보는 음료였습니다. 베를린에서 처음 접하는 문물이 많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된 느낌입니다. -_- 마테 추출물이 들어간 탄산 음료라는데, 이 클럽 마테 역시 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음료라 하네요. 고카페인 음료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카페인 자체 무력화 지수가 높은 제겐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녁을 먹고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이동하는 중. 저녁 노을을 즐기며 사색에 빠져있는 베를리너.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다다랐습니다. 베를린의 명물, 신호등맨(Ampelmann). 독일 통일 전, 동독 전역에 설치되었던 이 신호등맨은 처음 탄생했을 때만 해도 쓰고 있던 모자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동독 당국에 의해 승인 거절되는 바람에, 서민적인 디자인으로 변경(그래봤자 모자를 평평하게 바꾼 수준)한 지금의 모습으로 겨우 설치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통일이 되고 나서는 단일한 신호표지판을 사용해야 한다는 유럽연합의 규정 때문에 모두 철거될 뻔한 위기를 겪었으나, 동독 뿐만 아니라 서독 지역에서도 신호등맨을 살려야 한다는 구명운동이 일어나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답니다. 탄생 이후 약 50년 동안 기구한 운명을 겪었던 신호등맨은 이제 이 곳이 한 때 '동독' 지역이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역할 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업에 진출하여 관광 산업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구요. 자본주의를 떠올리는 모자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던 캐릭터가 이제는 그 독특한 디자인으로 관광객들의 지갑을 털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죠?


어쩌다 보니 예술과 문화의 도시에 와서 역사 공부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예술과 문화에도 역사는 스며들어있는 법이니..^^; 신호등맨 뒤로 보이는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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