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_Europe/Germany

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박제된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체크포인트 찰리

by 맨큐 2024. 12. 29.
반응형

지금이야 '클럽'으로 핫한 베를린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베를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음에도, 1989년 뉴스를 통해 접한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지구상에 남아있던 2개의 분단국가 중 하나인 독일이 통일되었으니, 유일하게 남아있던 분단국인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머지않아 통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도 들었던 것이겠죠. 아무 것도 모른 채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과 같은 가사의 노래를 따라 불렀을 때였으니까요. 아마 그 때 당시에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 통일은 커녕, 북핵 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암펠만(신호등맨)이 지키는 횡단보도 건너에 베를린 장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해인 1990년, 남아있던 베를린 장벽 일부에 전세계에서 모인 미술 작가들이 105개의 작품을 남겼는데, 이 야외 전시장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라 합니다. 그림 위에 덧칠해진 각종 이름과 문구들은 미술 작가들이 일부러 남겨놓은 것이 아니고, 관광객들이 낙서한 흔적들입니다. 많은 작품들이 이렇게 의도적 혹은 자연적으로 훼손되어서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라 합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린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1979년 10월,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가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서 기념식에 참석해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갑작스레(?) 키스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한 쪽의 일방적인 키스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둘 다 열렬해 보이죠?

이 작품은 그 당시 소련과 동독의 끈끈한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서방세계에서 그 당시 공산주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형제의 키스"의 부제를 통해서도 그러한 시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이시여, 나를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구원하소서."

 

손목에 고정된 쇠사슬로 인해 다시 앞으로  접을 수 없게 된 엄지 손가락. 치켜세워진 엄지손가락은 긍정적인 의사 표현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손목이 족쇄로 묶여 있어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담고 있다고 ChatGPT가 알려 주네요. 10년 전,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있는 각각의 작품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찾아보고자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봤음에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는데,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ChatGPT에게 물어보니 금방 답이 나오네요. 그 동안 블로그 포스팅 업데이트 중단은 여기서 내용 작성이 막혔던 것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터라, 기술의 발전이 놀라우면서도 허무하기도 하네요. 진작 ChatGPT 같은 서비스가 있었더라면..ㅠㅜ

아무튼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그려진 수많은 작품들의 의미를 상상하며 둘러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추측되지 않는 내용들은 ChatGPT의 도움을 받으시면 될 것 같구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여기저기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관광객들.

 

얼핏 보면 오른쪽에 그려진 인물은 히틀러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이 개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목줄에 묶여 있던 개가 드디어 풀려나 인간들과 함께 자유롭게 담배를 피게 되었다 뭐 이런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베를린 장벽은 슈프레 강을 따라 이어져 있어서 장벽 뒷쪽으로 가시면 이렇게 노천 카페들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에티블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맥주 한 잔 땡기는 풍경이네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작품들을 감상 중인 사람들.

 

이탈리아의 예술가 '풀비오 피나(Fulvio Pinna)'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림. '기쁨의 찬가'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장벽 붕괴와 자유,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 위에 적혀 있는 홈페이지(https://www.fulvio-pinna.com/)를 방문해 보니, 이것과 비슷한 그림이 첫번째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림 형태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원래의 작품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재작업을 했던 것일까요?

 

비록 작품들이 그려져 있긴 합니다만, 이런 커다란 캔버스 위에 관광객들의 낙서가 빠지면 섭섭하겠죠? ㅎㅎ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관광을 마치고, 슈프레 강의 '몰레큘 맨(Molecule Man)'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주친 코카콜라 독일 본사 건물. 건물 하단부 유리창에 그려진 코카콜라 병과 로고가 아니더라도 강렬한 빨간색 패널을 보자마자 '엇, 코카콜라 색깔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코카콜라 브랜드의 특징을 잘 담아낸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를린의 상징인 베를린 베어와 코카콜라의 만남! 곰은 베를린 시의 공식 상징인데, 2001년부터 '유니티 베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스타일과 테마의 곰 조각들이 베를린 전역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베를린의 다양성과 화합을 상징하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였는데, 코카콜라 독일 본사에 설치된 이 곰 조각상도 코카콜라가 베를린이라는 도시와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산화탄소 절감 활동에 진심이었던 것 같네요. 코카콜라 제로와 이산화탄소 제로를 이렇게 엮어 홍보를 하고 있었다니...

 

앞서 두번째 베를린 여행 포스팅(무려 10년 전 여행을 7년 전에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긴 합니다만)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베를린은 이미 10년 전부터 공유 차량 서비스가 정착되었었습니다. 위 차량은 독일 다임러 그룹이 운영하던 차량 공유 서비스인 카투고(Car2Go)의 스마트 포트 모델 차량입니다. 엄청 작아 보이죠? 좁은 도로와 주차 공간이 부족한 대도시 환경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초소형 차량이라고 합니다.

 

코카콜라 건물을 지나 이동하던 중 입술 모양의 입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봤는데, 클럽의 입구라고 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 베를린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 문화와 전자 음악의 메카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클럽 문화를 즐기기 위해 베를린을 찾는다고 하더라구요.

클럽의 시끄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왕 베를린까지 왔는데 잠깐이라도 베를린의 클럽 문화를 경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엄격한 입장 심사로 인해 우리가 입장을 시도하면 보안 담당자에게 입밴 당할 거라는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냥 클럽 입구만 구경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마도 저런 복장 정도는 갖춰야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한 슈프레 강 위의 '몰레큘 맨(Molecule Man)' 조형물. 이 조형물은 조나단 보로프스키가 제작한 것으로, 거대한 철제 인간 형상들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분단된 도시의 통합을 상징하며, 베를린이 동서로 재통합되었음을 상기키신다고 하네요.

 

이제 체크포인트 찰리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체크포인트 찰리로 넘어가는 길에 만난 '연합과 화합'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 알려진 그래피티 작품.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거리 예술가 '아미나코 아마르도 아길라르' 또는 독일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베를린 스타벅스.

 

체크포인트 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앤전 시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잇는 가장 유명한 경계검문소 중 하나로 지금은 역사적 의미를 담은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곳입니다.

 

위 사진은 미군 검문소 부스로 미국 군인들이 지키던 원래의 검문소를 재현한 모형이라고 합니다. 맥도날드 같은 상점 간판들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Mauermuseum)에는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개조된 자동차, 열기구, 터널 등등..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가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포토존 역할을 하면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데,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광객들만 기념 사진을 촬영하거나, 구경하는 모습.

 

체크포인트 찰리의 상징 중 하나인 군인의 초상화. 냉전 당시 동서 양쪽에 주둔한 미국과 소련의 군대를 나타내기 위해 세워진 간판으로 이 쪽에 세워진 간판은 소련 군인의 초상입니다. 냉전 시대의 긴장감이 느껴지시나요? ㅎㅎ

 

반대편에 세워져 있는 미국 군인 초상. 그리고 왼쪽의 경고 표지판에는 You are entering the American sector 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는데, 냉정 당시 이 표지판이 외국인과 외교관들에게 동독과 서독 간의 경계선을 명확히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체크포인트 찰리 블랙박스 콜드 워.

 

이 곳은 냉전을 주제로 한 소규모 전시 공간으로 냉전 당시의 주요 사건, 베를린 장벽, 동서독 분단, 그리고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냉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 기념 표시.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을 동서로 나눴던 베를린 장벽의 경로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에도 장벽의 흔적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구조물입니다. 장벽이 존재했던 실제 경로를 따라 황갈색 벽돌이 깔려 있으며, 베를린 도시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과거 장벽이 지나갔던 155km의 전체 경로를 따라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체크포인트 찰리를 비롯해 브란덴부르크 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포츠다머 플라츠 등 유명한 장소들에서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예전엔 장벽으로 막혀 있던 곳을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니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기도 합니다.

 

베를린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Berin Hi-Flyer 열기구. 시간이 늦어 열기구를 체험해 볼 수는 없었지만, 낮이었더라도 가격이 비싸서 탑승 시도는 안 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그리고 체크포인트 찰리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 현대적인 건축물과 과거의 흔적이 어우러진 풍경은 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합니다.

 

유난히 푸르게 빛났던 베를린 저녁하늘.

 

이것도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겠죠?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습니다.

 

베를린 1933-1945 오픈 에어 전시. 나치 시기의 베를린과 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다룬 전시인 것 같습니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역사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알찬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중..

 

친구 집에 들어오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독일 맥주 쾨스트리쳐(Köstritzer) 한 병 오픈! 독일의 유명한 다크 라거 중 하나인데,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자주 마셨던 맥주라고 합니다. 다음날 이번 독일 여행의 주요 목적지가 괴테의 파우스트에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르츠 국립공원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으니, 하루를 마무리기에 매우 적절했던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