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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Issue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서울대 김밥할머니 퇴출 사건에 대한 단상.

by 맨큐 2007.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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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에 대한 수사가 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이 엇갈리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확실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 하고 있는 경찰 및 검찰 측의 무능력한 모습, 국내 최대 로펌 '김&장'의 조언 및 지원을 받아 친한 친구의 핸드폰 번호와 집 주소를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김승연 회장의 차남의 뻔뻔한 작태 등에 국민들의 대다수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한편 며칠 전에는 서울대 캠퍼스 안에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학생들을 상대로 김밥을 팔아온 할머니에게 영업 금지 조치를 내리고 학교 내에서 축출한 서울대 인문대의 매정한 처사에 대한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졸업을 하기는 했지만 모교에서 발생한 일이라 흥미가 생겨 오랜만에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을 방문하여 학생들의 여론을 둘러봤더니 역시나 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었다. 여타 인터넷 공간에서 서울대 인문대의 매정한 처사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과 달리 스누라이프(SNULife)에서는 찬반 논쟁이 팽팽하긴 했지만, 며칠 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서울대학생들의 감정이 메말랐음을 얘기하던 서경석씨의 안타까움과 달리 예상 외로 김밥할머니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다른 사건에 대한 논란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다른 여론이 형성될만큼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었던가? 두가지 경우 모두 법과 원칙을 위반하여 사법적 혹은 행정적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 동정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왜? 한화 김승연 회장은 강자이고, 김밥할머니는 약자이니까?



1. 형사소송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
   (한화 김승연 회장의 유죄 인정 여부에 대하여)


 형사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법원리 중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법부에 의해 최종적으로 '유죄'임이 확정되기 전까지 형사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써 유죄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형사 피고인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제한받거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죄 추정의 원칙'은 10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형법의 대원칙 하에 우리의 경우 헌법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피고인의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현재 김승연 최장 측 변호인단은 경찰 및 언론의 태도가 이러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므로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인해 피고인의 유죄 입증의 책임은 경찰 및 검찰에 있다. 현재 경찰에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유이다. 만약 경찰에서 물증을 확보하는데 실패할 경우 정황 증거에 의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는 바, 이 경우 형사재판의 특성상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은 '있지도 않았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즉, 현재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여 '무죄'를 선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김승연 회장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니, 집중적인 비난을 성토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국민들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절대 아닐 것이다.



2. 식품위생법상 무허가 행위 :
    (김밥할머니의 법률 위반 인정 여부에 대하여)


 서울대 인문대는 5월 3일 학장단 회의를 열어 안병심(73) 할머니의 김밥 판매를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무허가 상행위를 허용할 경우 교내에 다른 잡상인들을 불러들일 수 있고, 위생 검증을 받지 않은 음식을 학생들이 먹고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다.

 할머니가 판매해 왔던 김밥의 경우 쉽게 상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써 적절한 판단이라 보여진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우려하여 판매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이 너무한 것은 아닌지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이라도 그 희박한 가능성으로 인해 집단 식중독 발병과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땐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고 비판할 것 아닌가!
 
 그리고 일부 기사에 실린 것과 달리 2003년 여름경 할머니가 판매하는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났으니 조치해 달라는 학생의 요구가 서울대 본부에 제기되기도 하였으며, 이에 따라 학교 측에서는 몇 번이나 김밥할머니에게 학교 내에서 김밥 판매 행위를 중지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갑작스럽게 취해진 조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절차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하자가 없어 보이는 학교 측의 조치에 왜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일까? 일부 언론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동정적 여론에 호소하는 뉘앙스의 기사를 올린 덕분에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졸지에 몰인정한 나쁜 사람들로 찍혀 버리고 말았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원칙일 텐데도 말이다.



3.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

 어찌보면 지금의 여론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승연 한화 회장측이 죄를 지었다고 단정하고, 뻔뻔하게 무죄임을 주장하는 그들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태도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법원이 유죄임을 확정한 이후에 비난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이들의 뻔뻔함이 미워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겠다.

 이에 반해 김밥할머니의 경우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됐든 식품위생법 등 현행 법률에 위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동정은 할 수 있겠지만, 학교 측의 조치가 재량을 남용하여 오히려 위법한 것이라 주장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이러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일까? 단지 김승연 회장이 저질렀을 것으로 보이는 행위가 더 중대한 범죄 행위인 것 같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 두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이렇게 확연하게 갈린 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겪어왔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국민들은 너무나 많은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그 동안, 아니 지금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분명히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얄밉게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여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서민들'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마땅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법의 선처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설움을 당해왔던 것이다. 1988년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르짖으며 인질극을 벌였던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오버 해석일까?

 며칠 전 김승현 회장이 저질렀다고 추정되는 보복폭행과 유사한 보복폭행을 저지른 아버지가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폭행 이유에 대해 밝혔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이 사건 역시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과의 유사점으로 인해 큰 관심을 받았으며,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동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동정적인 견해가 형성된 원인도 김밥할머니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 사람은 김승연 회장이 누렸던 '진술 거부권'을 행사할 생각을 할 수나 있었을까? 아마도 김승연 회장처럼 '아무것도 몰라요'로 일관한다면 나중에 유죄임이 밝혀질 경우 혹시나 그에 대해서도 처벌받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중대하고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법의 심판을 피해가는데, 왜 그보다 덜 중대하고, 덜 흉악한, 아니 지극히 미미한 정도의 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가혹한 처분이 내려져야 하는 것인가? 경험칙상 한화 김승현 회장에 대한 사법적 처리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관례대로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 김밥할머니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지금과 같은 양극화된 여론을 낳은 것이라 판단된다.



4.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꿈꾸며

전경련 회장님께서 이번 김승연 회장 사건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지나치다며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경련 부회장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재벌 총수에 대해 평균 수준 이상의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일단 전경련 회장님의 말씀에 대해! 맞다. 단순 폭행 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사태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간 자신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텐데? 이번 사건의 경우, 정황상 직접 폭행을 저질렀거나 폭행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만 넘기고 보자는 식으로 거액의 돈을 주고 산 변호인단 뒤에 숨어 치졸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뭔가? 단순 폭행사건이면 정당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밝히고 그에 합당한 죄값을 치뤄야 마땅하지 않은가!

 다음으로 전경련 부회장님의 말씀에 대해! 이 분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했나 보다. 동일한 죄를 저질렀을 경우 재산 소유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감안하여 벌금을 부과하는 핀란드 사람들은 비정상적이라서 그런 법률을 따르고 있는 거란 말인가? 최대한 양보해서 지나친 도덕성을 요구하는게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경제인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하여' 최대한 감형을 해 준 것에 대해서는 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인가? 기업인들을 평균 수준의 도덕성으로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범죄행위에 대해 양형을 하는데 있어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일반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권리는 평균 이상으로 누리되, 의무는 평균만큼만 이행하시겠다?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아무튼 지금 이번 폭행 사건을 법대로 처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니 나중에 일반인과 똑같이 취급하여 선고가 내려질 경우에 또 다시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길!

 서울대 인문대 측에서 김밥할머니를 쫓아낸 사건 역시 법과 규칙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서, 학생들의 안전한 식품을 먹을 권리 보호, 그리고 학생 및 교직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였던 것이다. 다만 추방 조치가 아니라 다른 방법, 식품영양학과에 의뢰하여 판매 제품에 대한 위생 검사를 실시하는 조건, 상할 염려가 있는 식품에 대해 아이스박스 등을 통해 관리하는 조건 등을 부가하여 예외적으로 판매 행위를 허용하는 등의 대안적 방법이 고려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과 원칙의 엄격한 적용이 비인간적이고 몰인정한 것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처럼 여전히 몰상식과 무원칙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법과 규칙이 최대한 엄격하게, 그리고 예외없이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법 위에 도덕이라는 상위 가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도덕적 가치에 의한 판단은 상황에 따라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일관된 판단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법과 규칙에 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과 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지 않을까? '뜨거운 가슴'도 중요하지만 '찬 이성' 역시 중요하다.



5. 마치며

 김승연 회장 차남께서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가라오케에 같이 놀러갔던 친구의 집 주소는 물론이고, 휴대폰 번호조차 모른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휴대폰 검사를 통해 친구의 전화번호가 노출될 것을 우려하였는지 휴대폰은 아예 소지하지도 않고 출두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같이 가라오케에 놀러갈 정도로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지적 수준으로 어떻게 예일대에 입학했을까 의문스럽지만, 이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면 예일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녀석이 부러워하는 것처럼 찌질대는 모습으로 보일 테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모자란 것 없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이번에 한 번 된통 당해봐라라는 심정에서 국민들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잘못을 했으면 떳떳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비겁한 태도는 현재의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피의자 신분으로도 당당하게 모든 권리를 누리며 조사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모든 국민에게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확립되기를 바란다. 법과 규칙의 위반 여부가 돈과 권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를 통해 결정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확립의 첫걸음일 것이다. 법은 불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즉, 불법에의 평등은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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