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 Daily Event/GOP

GOP 짬돼지를 아시나요?

by 맨큐 2007. 8. 9.
반응형
전 강원도의 모 부대에서 2000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 예비역 5년차입니다. 제가 복무했던 부대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백골 부대입니다. 최전방 경계 근무의 임무를 맡고 있는 최전방 부대 중 하나이죠.

부대 별칭이 무시무시하다 보니 왠지 부대의 분위기도 무시무시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백골 부대라고 해서 다른 부대와 특별히 다를 것은 없습니다. 훈련 내용, 그리고 부대 분위기 등은 전혀 안 무서운 별칭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부대의 그것들과 비슷할 겁니다. 다만 부대 마크만큼은 별칭에 걸맞게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실 수 있는 것처럼 백골 부대의 마크는 정말 '백골'이거든요. ^^
 

백골 마크 위로 흔히 개구리 마크라고 부르는 예비군 마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전역할 때 이 개구리 마크는 부대 마크를 제거하고 부대 마크 위치에 부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을 때 확인해 보면 백골 부대를 전역하신 분들의 전투복에는 이 백골 마크가 제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버로크'를 해 주는 곳에서 일부러 이런 식으로 예비군 마크를 붙여주거든요. 아마도 백골 마크에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계셨거나, 혹은 백골 마크를 자랑스레 여기셨던 백골 부대 출신의 많은 전역자 분들이 오래 전부터 이렇게 오버로크 해 줄 것을 요구한 결과, 이제는 특별히 이런 식으로 오버로크해 줄 것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전역시 전투복상의 부대 마크를 제거하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백골 부대는 최전방 GOP 경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대입니다. 최전방 GOP는 군인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인 만큼 평상시에 흔히 접할 수 없는 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짬돼지라는 녀석입니다. 물론 일반 돼지는 농촌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으니 GOP가 아니더라도 흔하게 접할 수 있겠지만, GOP의 군부대에서 자주 출몰하는 멧돼지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 경험상 GOP에서 철수하고 FEBA에서 생활했을 때는 짬돼지를 본 적은 없습니다만, GOP가 아니더라도 산골 오지에 위치한 군부대라면 짬돼지가 출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군대에서 먹는 밥을 짬밥이라고 합니다. 왜 군대밥을 짬밥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일단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짬밥에서의 '짬'과 멧돼지의 '돼지'를 합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짬돼지입니다. 즉 짬밥을 먹고 사는 멧돼지인 셈이죠.



짬돼지는 바로 이렇게 생긴 녀석들입니다. 흔히들 멧돼지라고 부르는 동물이지요. 다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멧돼지와 다른 점은 인간이 주는 잔반을 먹고 산다는 정도? 위의 사진은 눈이 많이 쌓여 먹이를 구하기 힘들었는지 11마리의 멧돼지 가족들이 잔반 수거통에 몰려와 짬밥을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눈치빠른 1~2마리 정도가 조그마한 잔반 수거통에 먹이를 먹으러 왔었는데, 겨울에 추워지면서(전 대한민국 땅에 영하 38도까지 내려가는 곳이 있을 줄은 군생활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일기예보에서 영하 30도 얘기가 나오면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 먹이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점차 그 수가 늘어나더니 이렇게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잔반 수거통도 원래는 이렇게 널찍한 형태의 것이 아니었는데, 멧돼지 가족들의 편안한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부대장님의 명령 하에 교체된 것입니다. 저 무거운 잔반통을 언덕 아래 저 위치로 운반하기 위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사실 눈물을 흘렸다는 건 농담이구요. 여러 명이서 운반했는데도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그냥 잔반통을 언덕 아래로 내던지고 데굴데굴 굴렸던 기억은 나네요. 그 때도 위 사진에서처럼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다행히 의도했던대로 잘 미끄러져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 혹시 현재 해당 부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분이 이 글을 보셨다면 지금도 저 잔반통이 남아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전에는 잔반을 되도록 남기지 말라는 명령으로 인해 부대원들도 잔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만, 멧돼지 가족의 등장 이후에는 이들의 먹이 부족을 염려한 착한(?) 부대원들이 자발적으로 잔반을 늘리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더군요. 잔반이 생길 때마다 시시콜콜 잔소리하시던 부대장님도 이 때만큼은 잔반이 늘어나더라도 멧돼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구요. 군인들은 단순히 반찬이 맛없어서 남긴 것일 가능성이 99%이지만, 그냥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이 사진은 2001년 당시 군대 내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탔던 사진입니다. 짬돼지에게 정성껏(?) 잔반을 제공하고 있는 부대가 있다는 식으로 외부에 알려진 덕분에 군인들에게 매일 제공되는 신문인 국방일보에도 크게 소개되었던 사진이거든요. 이 국방일보를 관리하는 것도 군인들의 업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정훈병이라는 특정 계원의 임무이긴 하지만요.

제가 이 사진을 이렇게 액자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이유는 부대장님께서 이 사진이 국방일보에 소개된 기념으로 사진을 액자에 넣어 주위 분들께 선물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대장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농담입니다. ^^;) 제가 액자의 아래 부분에 사진 촬영 일자와 사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붙여넣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선물후 남은 사진 중 하나를 제가 재료비만 지불하고 구입한 것이죠. 공짜로 하나 주셨을 법도 한데..;;;



액자 부분을 제외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밥 먹는데 정신 팔린 녀석들도 보이고, 식사를 마쳤는지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 녀석들도 보입니다. 가운데 서 있는 녀석이 유난히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들이받을 태세를 하고 있네요.

다행스럽게도 군인들이 짬돼지에게 받히는 사건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단 잔반통을 식당과 멀리 떨어진 언덕 아래에 설치했던 데다가, 부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잔반을 한꺼번에 모아서 잔반통으로 배달해 주면 30분 정도 지난 후에야 어디선가 멧돼지 가족들이 몰려와 밥을 먹곤 했으니 부대원들과 멧돼지들이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은 없었거든요. 아마도 멧돼지들이 잔반의 냄새를 맡은 후에야 밥을 먹으러 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 짬돼지에게 받히는 사고가 발생했더라면 국방일보가 아니라 유력 일간신문들에 소개될 일이었겠죠? ^^



노려보고 있는 녀석을 좀 더 가까이에서 찍어 보았습니다. 열악한 조명시설(?) 덕분에 인화지의 무늬가 그대로 찍혀버렸네요. 그나마 덩치도 작은 녀석이 이렇게 노려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녀석이라도 우습게 볼 일은 아닙니다. 이 정도 크기의 멧돼지라도 길에서 갑자기 마주치게 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실제로 GOP에서는 간간히 멧돼지가 아무 이유 없이 일반 도로에 출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대공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도중, 멧돼지 한 마리가 갑자기 초소 근처의 도로에 나타나서 소초에 그 사실을 알렸더니 후임 경계 근무자가 멧돼지와 마주치는 것이 무서워 멧돼지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근무 교대를 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미 교대 시간이 1시간 지난 뒤였죠. GOP에서는 실탄을 장전하고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싶으면 총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직접적으로 저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무고한 멧돼지를 향해 함부로 총을 발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냥 계속 멧돼지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면서 투덜거렸더랬습니다. 물론 멧돼지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총을 발포하였더라도 상급부대로부터 조사를 받는 등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 1년이라는 기간을 GOP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얼마 전 자취생활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짐 정리를 하면서 발견한 이 사진 덕분에 GOP 짬돼지에 대한 얘기를 가장 먼저 포스팅하게 되는군요. 앞으로도 생각나는 재미있는 GOP 얘기를 간간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강물에 떠내려온 북한군 하사 얘기도 재밌을 것 같네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죠. ^^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GOP 부대로의 편입을 강력하게 요청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짬돼지는 물론이고 독수리, 꿩, 거북이, 고라니, 뱀 등등 평범하지 않은 동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물론 저는 한 번 겪어봤으니 사양하겠습니다만..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