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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ily Event/GOP

[입소대대] 훈련소 가는 길 Ep. 1

by 맨큐 201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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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서울대생이 여기엔 왜..?"
"서울대생이 거기엔 왜..?"

서울대생이 그 곳에 가지 말라는 법은 없었는데 2년여의 자대 생활 동안 참 많이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렇다. 난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무척 험난한 GOP라는 곳에서 2년여의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다. 훈련소 기간까지 포함하면 정확하게 2년 2개월. 군 복무 기간을 다시 24개월로 복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꽤나 긴 기간(?)을 복무한 셈이다.

군대 가기 전에 과연 군대란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두려움을 억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군대와 관련된 책을 읽어 보는 것이었다. 당시 지인 중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 없었기에 책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군대가 어떤 곳인지 알아놓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 선택한 책이 바로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보며 가졌던 오만가지 생각 중 하나. '나도 군대 제대하고 나면 꼭 한 번 나의 군생활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것.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와, 군대라는 곳에 가게 되면 정말 개고생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기억해서 글로 풀어봐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이제 그 때 가졌던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사실 예전에 싸이월드에 올리다 만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군대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제대하는 그 순간까지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GOP에서의 군생활에 대해서..

. . . . . .

2000년 1월 17일..

부모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군대 가기 전날까지만 해도 앞으로 2년 2개월 동안 나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면 그저 암담하기만 했는데..막상 입대 당일이 되어 훈련소로 가는 동안에는 담담했던 것 같다. 어쩌면 훈련소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내 손을 잡아주셨던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논산에 도착해 훈련소 근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바로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얼마 안 있어 입대 예정 장병들은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신호가 떨어졌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는 부모님과 헤어져야만 했다.

이제 완벽히 혼자 떨어지게 된 것이다. 험악해 보이는 조교들의 인솔하에 4일간 머무르게 될 막사로 이동을 했다. 진짜 논산훈련소로 가기 전에 입소대대라 불리우는 이 곳에서 4일 정도를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허접해 보이는 막사 안에서 조교들의 욕을 먹어가며 신상명세서, 군입대 각오 등의 서류를 작성했다.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당연히 모를 수 밖에...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 단계에서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걸러냈다. 나와 함께 입대한 사람들 중에도 몇 명 있었는데 당시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기였기에..바로 다른 장소로 불려 갔었던 것 같다. 아마 바로 군형무소로 끌려갔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서류 작성 후에 일단 간단하게 군용 피복을 지급받았다. 군복, 전투화, 전투모, 군용양말, 속옷, 내복, 짜장색 추리닝(트레이닝복), 활동화(운동화), 고무링 등등..특이하게 덩치가 크거나 작은 사람이라면 이런 물품들을 지급받을 때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 사이즈의 물품들이 모자라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처럼 표준형±a의 체형을 가진 사람들은 단지 보통의 체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조교들에게 욕을 먹어야 한다. 장병들의 사이즈에 맞는 군용피복이 모자라기 때문에 제 사이즈를 챙기지 못한 장병들의 교환 요구에 크나큰 혼란이 벌어진다. 하지만 1주일에 한번씩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조교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어리버리한 애들의 칭얼대는 소리로만 들릴 뿐...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날리는 조교의 한 마디..
"이 새끼들아, 옷이 안 맞으면 니들 몸을 옷에 맞춰!!"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몸을 옷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들 위의 말을 들으면 '이 새끼가 언제 날 봤다고 계속 욕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조교들의 살벌한 분위기 조성으로 인해 비굴해질대로 비굴해진 예비 장병들은 불만을 내색하지도 않고 몸을 옷에 맞추려 노력한다. 심지어 전투화, 전투모까지도...

나는 다행히 전투화 빼고는 제 사이즈를 챙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군대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전투화만큼은 딱 맞는 사이즈를 챙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신어보는 거친 전투화에 발 뒤꿈라든가 발바닥이 다 까지기 때문이다. 이걸 몰랐기 때문에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뒤꿈치가 까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렇게 군용 피복을 지급받고 나면 입대후 첫번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옷을 갈아입고는 자기가 입고온 옷과 신발을 소포로 싸야 하는 것이다. 소포용 포장지와 노끈 2줄씩을 나눠 주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여기저기서 종이가 찢어졌다, 노끈이 끊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자 하나 없이 옷과 신발을 종이로 포장하라는 무리한 요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조교들은 종이를 왜 찢냐며 욕지기를 날린다. -_-;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포장을 끝내긴 끝낸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소포 안에 간단한 메모를 동봉한다. 부모님께 보내는 짧은 안부 메모.. 부모님들께서는 나중에 이 소포를 받고 나시면 많이 우신다던데..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도 입소할 때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동봉된 소포를 받아들고는 많이 우셨다고 한다.

이렇게 정신없는 절차를 밟고난 후엔 저녁을 먹여준다. 밥을 먹기 전에 3일 동안 쓰게 될 개인용 포크숟가락을 나눠준다. 숟가락을 잃어버리면 앞으로 당분간 밥을 손으로 퍼서 먹어야 한다는 경고와 함께..

군대에서 먹었던 첫 식사는 훈련소에 들어오기 전 음식점에서 먹었던 사제 점심보다 맛이 없었다. 논산훈련소 근처에서 먹었던 마지막 사제 점심도 지금까지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맛없었는데..ㅠ.ㅠ

이렇게 대충의 일과가 끝나고 나서는 저녁에 영화를 보여줬다. 그 유명한 '타이타닉' !! 이 땐 '요즘 군대 좋아졌다더니 이렇게 문화생활도 시켜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주일만에 어이없는 착각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입대하기 한참 전에 다짐했던 게 있었다.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에는 절대 '타이타닉'을 안 보겠다는 다짐...그런데 이렇게 입대하자마자 어이없게 다짐이 깨어질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어쨌든 어이없긴 했지만 '타이타닉'은 재미있긴 재미있었다.

'타이타닉'과 함께 입소대대에서의 첫째날이 지나갔다. 앞으로 오늘과 같이 간간히 문화생활도 할 수 있는 낭만적인 군생활이 펼쳐질 거라는 착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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