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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ily Event/GOP

[입소대대] 훈련소 가는 길 Ep. 3

by 맨큐 201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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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대대에서의 마지막 코스는 주특기 분류이다. 일반 소총병으로 입대한 병력 중에서 특별한 재주(?)를 가진
특수 능력 보유 자원을 추려내는 작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내 능력을 어필했어야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조금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때만 해도(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는 정말 앞가림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한심한 존재였던 것이다. ㅠㅠ

사실 군대라는 곳은 일부 '신의 아들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강제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감옥같은 곳이기 때문에(그런데 요즘은 '신의 아들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떤 곳에서 어떤 보직을 맡게 되든지 힘들고 짜증날 수밖에 없지만서도, 그렇게 짜증나는 군대라는 곳에서도 소위 '땡보'라고 불리우는 보직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니...바로 이런 '땡보'를 골라내기 위한 첫번째 작업이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어쨌든 무너가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이니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잽싸게 침구를 정리한 후 눈이 제대로 떠지기도 전에 연병장에 집합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싶은지 이틀 전보다는 손쉽게 구보를 마치고, 헐레벌떡 식사를 한 후에 전 인원을 강당같은 곳에 모아놓고 주특기 분류 작업이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있던 내게 있어 하루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있게 화장실에서 일을 봐야 했는데, 침구 정리하랴, 전투복 챙겨입으랴 도무지 화장실에 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구보하는 동안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냈던 기억이...이러한 경험 때문에 훈련소에서는 미리 불침번에게 기상시간 1시간쯤 전에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미리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다시 눈을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활의 발견 !

주특기 분류 작업이라고 해서 별 건 아니다. 장교인지 조교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아마도 장교였던 것 같다.) 누군가가 강당 앞으로 나와 모여있는 수많은 장병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사회에서 자신이 테니스 좀 쳐 봤다. 거수!"
"사회에서 골프채 좀 휘둘러봤다. 거수!"

이렇게 자원을 받은 후에 테스트를 해 보는데, 테스트라는 것도 분류 작업만큼이나 참 허접했다. 테니스 라켓, 골프채 하나 쥐고 휘둘러 보는 것으로 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장교의 기준으로 폼이 괜찮아 보인다고 판단되면 '통과~'라고 하는데, 희미한 기억이긴 하지만 그 때 당시 통과된 사람들 중 제대로 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 말하는 '빽'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물증이 없으니..

요즘에는 주특기 배정에 대한 갖가지 의혹 때문에 이런 작업이 공정하게 컴퓨터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전시 행정의 일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말했던 작업 과정에서 '빽'이 작용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테니스병이나 골프병의 경우 컴퓨터를 통한 분류가 불가능한 보직이기 때문에 컴퓨터를 통한 주특기의 무작위 배정이 불가능하고 이러한 허점을 통해 여전히 불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아, 그런데 지금은 테니스병이나 골프병 보직 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사단장 혹은 연대장 부인들이 이 테니스병 혹은 골프병을 자신들의 뒤치닥다꺼리를 해결하는 개인적인 용도로 활용한 적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으니...

아무튼 내가 입대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골프병과 테니스병이라는 보직은 엄연히 존재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테니스병과 골프병을 '땡보'의 예로 들었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테니스장 관리하면서 장군들 혹은 사모님들 상대하려면 얼마나 피곤한 줄 아느냐는 식으로...하지만 이 때 당시만 해도 해당 보직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들만 들어서인지 편해 보였다. 지금은? 어떤 보직이 가장 편할지에 대한 문제에는 전혀 관심 없다. -_-

결국 입소대대에서 나의 주특기는 일빵빵(요즘은 1111)으로 결정되었다. '그래도 서울대생인데...어떻게든 행정병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이 때부터 내 군생활은 꼬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강의 주특기 분류를 하고 나서 입소대대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진짜 논산훈련소로 입소하게 되었는데...빨간 조교 모자를 쓴 조교들이 친히 마중을 나와 주었다. 지금 생각해면 진짜 별 것도 아닌 군인들일 뿐인데, 입소대대에서의 헐렁한 조교들과는 사뭇 다르게 잔인해 보이는 그들의 눈빛과 말투에 왜 그리 긴장을 했던 것인지...

긴장과 공포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더플백을 등 뒤에 메고 조교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지옥의 소굴 '논산훈련소'로 발맞추어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안 하면 훈련소까지 오리걸음으로 갈 수도 있다는 조교들의 엄포 때문에 말이다.

입소대대에서의 짧은 기간 동안 '군대'라는 곳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오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군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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