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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conomics

경제학의 기본 가정, 합리성의 의미에서 살펴본 FTA에 대한 입장 정리.

by 맨큐 200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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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한없이 큰데,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은 이렇게 희소한 경제적 자원을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찾고자 하는 선택은 '합리적인 선택'을 의미하는데, 이 때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 경제 주체의 합리성을 가정합니다. 합리성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경제학에서 합리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비전문가인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이준구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진 개념일까? 이 개념이 갖는 의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합리성이 다름아닌 수단으로서의 합리성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단 설정된 목표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과의 관련 하에서 합리성이 비로소 제 뜻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느냐는 물음과 결부시켜 합리성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방법의 합리성이란 의사 결정시 신중한 고려의 토대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욕망, 기호, 동기 등 목표 설정과 관계되는 여러 요인들이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단지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합리성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합리적인 방법이라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법의 합리성이란 의사 결정을 할 때 신중한 고려의 토대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점에서 본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비합리적인 방법보다 나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해 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단지 여러 경우를 놓고 보았을 때, 확률적 의미에서 합리적인 방법이 한층 더 낫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준구, 미시경제학, 제 3판, p.13

인류는 짧은 역사를 통해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과연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일 뿐더러.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 결과가 확률적인 의미에서 더 나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정상적인 사고방식만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비합리적인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런 사례들을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각자 떠오르는 사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밀하게 검증하지 않더라도 현실은 이와 같이 비합리적인 일들로 가득차 있는데, 경제학은 왜 합리성이라는 가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다시 한 번 이준구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합리성의 가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인간의 합리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도출된 이론이 현실에 들어맞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합리성의 가정이 현실의 사회현상에 대해 유용한 예측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유용성이 계속 인정될 수 있는 한 구태여 다른 가정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합리성의 가정이 유용한 예측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회적 현상이 많은 사람들의 총체적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합리적인 행위는 목적과 일관된 행위를 의미하며, 따라서 체계적인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비합리적인 행위는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체계가 있을 수 없다. 사회적 현상이 많은 사람들의 총체적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자연히 합리적 행동의 규칙성이 비합리적 행동의 불규칙성을 압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 기초 위에서 도출된 이론은 현실의 사회현상을 그런대로 잘 설명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준구, 미시경제학, 제 3판, pp. 12~13

이에 의하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합리성은 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유용한 예측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합리성의 가정은 과연 어떠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간단한 퀴즈 문제를 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협상게임(bargaining game)에 임하게 됩니다. 참가자는 자신을 포함해 단 2명이고, 임의적으로 자신을 참가자 A, 그리고 상대방을 참가자 B라 하겠습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2명에게 공짜로 100$를 나누어 주고, 이 100$를 적절히 나누어 갖는 게임입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참가자 A가 먼저 참가자 B에게 100$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제안합니다. B는 A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B가 A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사용 가능한 돈은 90$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B가 남은 90$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A에게 제안하게 됩니다. 만약 A가 B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사용 가능한 돈은 80$로 줄어들며, 다시 A가 남은 80$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제안합니다. 만약 B가 A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사용가능한 돈은 70$가 아닌 0$로 줄어들게 되어 A와 B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 하게 됩니다.

이 때 참가자 A와 B는 합리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또한 A와 B는 '서로 좋은게 좋은 거 아니겠어'와 같은 합의를 시도할 수 없으며, 자신에게 '얼마 이상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책임질 수 없다'와 같은 협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를 원한다면 이 게임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답은 참 간단한 것 같습니다. A와 B는 모두 합리적이니까 각각 50$씩 나누어 가지면 문제에서 요구하는 최상의 결과가 달성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의 가정은 이러한 결과는 결코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100$를 어떻게 나누어야 합리성의 가정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역진귀납법(BACKWARD INDUCTION)'을 도입해야 하는데, 역진귀납법이란 이러한 문제처럼 순서대로 진행되는 일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가능한 결과를 최후의 순서에서부터 되짚어 돌아오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역진귀납법에 의하면 A의 두번째 제안, B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제안, A의 첫번째 제안의 순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먼저 세번째 제안인 A의 두번째 제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B가 A의 제안을 거부하면 A와 B는 모두 0$를 가지게 되므로 A는 B에게 0을 제안하더라도(0보다 큰 최소의 수 a를 제안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으므로 a가 아닌 0을 제안한다고 하겠습니다.) B가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따라서 A는 남은 80$를 자신이 모두 가지고 B는 0$를 가질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여기서 합리성의 가정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B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맞게 되면 A가  남은 돈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경우 배가 아프니 혼자서만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거부하고 다 같이 평등하게 0$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지만 만약 B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자신에게 0$가 배정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음(-)의 이익, 즉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 A가 B에게 0이 아닌 a(0보다 큰 최소의 금액)를 제안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B가 제안을 거부할 경우 아무것도 갖지 못 하지만, 제안을 수락할 경우 매우 작기는 하지만 a만큼의 금액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때 a는 0보다 큰 최소의 금액이므로 극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결국 A가 B에게 0$를 제안하더라도 이를 수락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두번째 제안인 B의 첫번째 제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A가 B의 제안을 거부하면 다음 단계에서 80$를 가지겠다고 제안할 것이므로 B가 A에게 80$를 제안하면 A는 이 제안을 거부할 유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B는 A가 80$를 가지고, 자신이 10$를 가지겠다고 제안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첫번째 제안인 A의 첫번째 제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B가 A의 제안을 거부하면 B는 다음 단계에서 10$를 가지겠다고 제안할 것이므로 A가 B에게 10$를 제안하더라도 B는 이를 거부할 유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A는 B가 10$를 가지고, 자신이 90$를 가지겠다고 제안할 것입니다.

결국 합리적인 A와 B는 최종적인 결과로 '첫번째 단계에서 A가 제안한 (90$, 10$)를 B가 수락하여 A는 90$, B는 10$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50$, 50$)를 제안하여 각자 절반씩 차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과라 예상하셨겠지만 그와 사뭇 다른 결과가 아닐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대학의 어떤 교수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이와 비슷한 실험을 진행한 바 있는데, 40명 중 과반수가 훨씬 넘는 학생들이 (50$, 50$)를 제안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과 현실에서 인식하는 합리성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같이 게임에 참가했음에도 누구에게는 90$가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10$가 주어지는 결과야말로 합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누가 봐도 불공평한 이 결과를 경제학에서는 왜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합리성의 가정이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서 공평성이 희생되는 결과가 도출되고 마는 것이죠. 경제학은 이러한 거침없는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현실적이고 냉정한 학문이라는 비난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경제학의 성향으로 인해 경제학이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는가에는 의심을 제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애로우(Arrow)라는 유명한 경제학자는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적 의사 결정 체계가 가져야 할 조건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1) 집단적 합리성으로써의 완비성과 이행성, 2) 파레토 원칙, 3) 무관한 선택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 4) 보편성, 5) 비독재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애로우는 개인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집계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적 의사 결정 체계는 존재하지 않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 2), 3), 4)의 조건을 만족하는 사회적 의사 결정 체계는 반드시 5)의 조건을 위배하게 되므로 모든 사회적 대안을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이면서 합리적인 사회적 의사 결정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결론을 도출해내고 말았던 것이죠.

여기서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멋지게 수학적으로 증명해 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제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예전에 모 교수님께서 경제학 수업시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문제를 간단한(?) 퀴즈라며 학생들에게 풀어보라고 하신 후 이런 문제도 못 풀 것 같으면 고시 공부나 하라고 일갈하셨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고시 공부를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무능력한 것도 죄라면 경제학이 효율성과 공평성의 문제를 동시에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 하고 있는 것 역시 죄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학부에서 몇 년간 경제학을 배운 덕분인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라는 요구는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의사 결정 체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는 것이니까 말이죠. 게다가 비록 경제학은 그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효율성과 공평성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조금은 경제학을 변명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 옛날, 또 다른 유명한 경제학자인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차가운 이성(Cool Head)과 뜨거운 가슴(Warm Heart)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현대 경제학에서도 이러한 그의 주장을 현실경제에 접목시키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후생경제학 제 2정리라 할 수 있습니다. 후생경제학 제 2정리는 '초기 부존 자원을 적절히 분배할 수 있고, 경제 주체들의 선호 체계가 볼록성을 만족한다면 일반경쟁균형은 파레토 효율성을 만족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으며, 이는 정부 정책의 목표로써 효율성과 공평성은 분리하여 추구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효율성과 공평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더라도 일단 효율성을 만족시킨 후,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해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평성을 만족시킬 수도 있음을 밝혀낸 것이죠. 물론 이 경우 역시 어떠한 기준으로 자원을 재배분해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정치, 즉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한미FTA 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FTA는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로 자유 무역 증진을 위해 협정을 맺은 국가들간에 상호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WTO 체제 하에서 지역주의의 일종인 FTA가 과연 자유 무역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관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대체적으로 FTA는 전세계적인 자유 무역을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FTA의 확산으로 인해 자유 무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무역의 확산이 과연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의문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경제가 선택 과목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정치, 경제'라는 과목이 필수였고, 경제 파트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리카도(Ricardo)의 비교우위론이었습니다. 비교우위론에서는 각 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제품을 수출함으로써 무역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외에도 자유 무역을 통해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으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자유 무역으로 인한 이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자유무역의 이러한 장점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렇게 자유무역을 통해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FTA를 찬성해야 할 테지만 현실에서는 확연히 이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FTA에 결사 반대한다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FTA에(혹은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자유무역이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자유무역으로 인해 무역에 참가한 모든 국가가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는데, 이 때의 이득은 한 국가가 자유무역을 통해 얻게 되는 순이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유무역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손해를 보는 계층과 이익을 보는 계층이 발생하게 되는데 손해의 규모보다 이익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이득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FTA 체결로 인해 손해를 보는 대표적인 계층은 바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농민 분들의 FTA 반대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죠.

주류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앞에서 살펴본 경제학의 합리성의 가정이 간단한(?) 퀴즈에 대해 취하는 견해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이 가질 수 있는 몫이 줄어든다는 점, 불공평한 결과가 야기된다는 점 등의 요소가 바로 그것이죠.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퀴즈에서 참가자 B에게 적어도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FTA에서 농민들에게는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재분배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합리성이 적용될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차이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경제학에서 FTA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해집니다. FTA는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상품을 더 싼 가격에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통해 사회 전체의 효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켜 주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계층에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은 FTA가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폐해라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상태로 FTA를 추진한다면 FTA는 기회가 아니라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해야만 할 것입니다. 결국 경제학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FTA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FTA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양극화와 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2가지 방향의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첫번째는 FTA 체결시 증가하게 될 농산물과 같은 수입품을 생산하는 계층에 대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상해 주는 방법입니다. FTA로 인해 농민과 같은 계층에게는 분명히 피해가 발생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FTA로 인해 증가한 이익을 차지한 계층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계층에게로 소득을 이전하는 형태가 될 것이므로 충분한 정도의 보상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합의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FTA에 대한 반대 시위는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를 우려해 보상 수준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두번째는 FTA 체결 후 수입제품과 관련된 산업 부문의 위축으로 실업이 발생하게 될 텐데, 이러한 산업 분야로부터 이탈한 노동자들이 다른 산업 분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재취업 교육을 강화하고, 산업 전반의 구조 재편 방향을 분석하여 이를 통해 합리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산업정책과 관련한 대책이 어쩌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접적인 보상대책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일 수도 있음에도 현재 FTA 보상대책에는 전자와 관련된 해결책이 결여되어 있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먼 미래를 미리 예측하여 발생가능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검토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분명 현재 타결된 FTA 협상으로 인한 피해 보상 대책이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상 대책과 산업 정책이 미흡하다고 해서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보상 대책과 산업 정책이 미흡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 미흡한 수준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촉구해야 할 것이지,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이익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퀴즈와 비교하면 FTA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국가 전체적으로 증가할 이익 증진의 기회를 막아섬으로써 100$를 아예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FTA가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FTA로 인해 이익을 보는 다수의 사람들만이라도 FTA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시위를 개진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 시위만이 있을 뿐, 찬성 시위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FTA로 인해 증가하는 이익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될 것이기 때문에(심지어는 FTA를 반대하는 이들도 소비자로서 경제 활동을 영위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들에게도 FTA로 인한 이익이 분배될 것입니다.) 개개인에게 돌아갈 이익 증진 수준은 상당히 작아지게 됩니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이익을 누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자발적인 수고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라 하는데, 분명 FTA 체결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수준이 작거나 이익 증진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애써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코 이익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죠.

한미 FTA 협상 자체가 우리나라에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손익계산은 FTA의 실시가 우리나라에 가져다 줄 이해관계를 균형있게 검토한 이후에 이루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손해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서 FTA 자체를 악의 축 정도로 규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협상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협상 내용을 수정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해결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죠.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은 FTA로 인한 불공평성을 치유하는 일이어야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FTA를 반대함으로써 국가적 이익 증진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분명 FTA 협상은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을 것입니다. FTA 협상 타결을 저지하기 위해 분신을 하신 분도 계시고, 강력하게 반대 시위를 전개하는 단체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 분들이 모두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FTA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기본적으로는 FTA에 찬성하되, 협상에 있어 우리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협상 타결 이후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가 되는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통해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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