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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사회] 불멸의 신성가족

by 맨큐 2009.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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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사법시험 합격' !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므로 '누구나'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법시험 합격'에 매달려 있고, 사법시험 합격 이후의 삶을 선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신림동 고시촌에 가면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부터 50대의 아저씨들까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사법시험 하나만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은 사법시험 말고도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여타 시험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신림동 고시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은 ('무늬만' 시험 준비생인 사람들을 포함해) 사법시험 준비생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법시험 준비생들은 우리나라의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과 동시에 입신양명을 이루기 위해서 사범시험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혹자는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힘들고 외로운 여정을 이겨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기에 합격 이후에 따를 명예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사법 정의를 세우기는 커녕, '과연 이것들이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법을 집행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일신의 안위 영달만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왜 그런 현실이 빚어졌을까요? 잠시나마(?)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했던 저 역시 수많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을 알고 지냈고, 이후 시험에 합격하여 판사, 검사, 변호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선후배, 동기들도 많습니다. 합격생 신분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은 언론에서 자주 접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비리로 점철된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사법시험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도전하기 전에 품었던 곧은 의지를 가지고 비상식과 불법으로 얼룩진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제가 주변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겠지만, 제가 제 주변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 하는 상황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 생활에 적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는 봅저계의 구조가 문제인 것이죠.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인 김두식님 역시 그렇게 판단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김두식님은 판사, 검사, 변호사는 물론 법조 브로커, 기자, 경찰, 마담뚜까지 법조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물론, 법률 문제로 인해 고생했던 사람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해 이 책을 엮었다고 합니다. 23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원고지 7천장 분량의 녹취록으로 정리한 결과물이 바로 '불멸의 신성가족'인데 정말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었을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습니다. 저도 예전에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시국 강연을 녹취한 바 있었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까다로운 작업이었거든요. 그 때의 작업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ㅠㅠ



이렇게 만들어진 '불멸의 신성가족' ! 책의 저자 김두식님은 내부 성찰 없이 곪아터진 법조계의 내부, 그리고 그 안에서도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사법 시스템을 낱낱히 공개하고자 했다 합니다. 목차에서 알 수 있듯, 김두식님은 그래도 법조계의 현 모습을 어느 정도 변화하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반 사람들이 법조계를 대하는 시선은 김두식님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배임죄는 저질렀지만, 227억원 배임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3년은 선고했습니다. 제가 법을 제대로 못 배운 사람이라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227억원(배임 수준이 227억원에 그치는 것조차도 의심스럽기는 하지만)의 배임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낮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는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김두식님이 법조계 내부에서 억지로 희망을 찾아보기는 했지만, 이미 우리나라 법조 시스템은 곪을대로 곪아 그 희망마저도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사례였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는 우리나라 법조 인력 채용 및 양성 시스템이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두식님이 표현했듯, 사법시험(뿐만 아니라 모든 고등고시를 포함)에 합격하면 시험 준비생은 그 때부터 인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젊은 시절을 책상에 처박혀 공부에만 몰두하느라 '잃어버린 청춘'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법조 인력 채용 및 양성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쿨 제도가 그 대안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로스쿨 제도는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라 생각하기에 말이죠.

특히나 사법시험, 그리고 연수원 성적을 기초로 판사로 임용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정말 당장이라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시험과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가진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여지가 없습니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사법시험 합격자들 중에서도 최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난다 긴다 할 정도의 수재들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똑똑하다고 것만이 판사 임용의 유일한 잣대로 기능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너무나도 허술합니다. 사회를 제대로 접하지 않은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일반 소시민들의 억울함을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전관예우 문제 역시 이러한 임용 시스템에서 싹튼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법원장, 대법관 등을 거쳐 변호사 개업한 사람들은 법복을 벗었어도 여전히 법조계 내부에서 판사님으로 통하고 있다 하니,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판사들이 이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헌법에 보장된 것처럼 객관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실비'라는 명목으로 변호사들이 판사나 검사들에게 챙겨주는 용돈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다 합니다. 예전에도 그래왔으니까 판사나 검사들은 관행적으로 실비를 받아 유용하게(?) 활용해 왔구요. 자신들보다 까마득한 선배들이 주는 이 '실비'는 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이었으며, 이를 거절하면 호의를 거절하는 사교성 없는 인간으로 찍힐 수도 있었다 하는군요.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 김두식님에 의하면 지금은 어두운 과거가 되어버린 '실비' 관행은 이제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해도 좋을 정도라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판사, 검사들이 이 어두운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실비를 받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고 말이죠.

저와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법조계는 상당히 거리가 먼 세계입니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살게 된다면 일평생 단 한 번도 판검사, 변호사들을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물론 판검사, 변호사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이들을 만날 일이 없다고 해서 법조계에 대해 신경을 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그리고 사법 분야에 대한 철저한 개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정치계, 법조계의 내막을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멸의 신성가족'은 그 동안 일반 국민들이 몰랐던 법조계의 얼룩진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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